리틀 스트레인저 The Little Stranger (2009)

2010.10.04 00:13

DJUNA 조회 수:12253




Sarah Waters (글)


(스포일러는 될 수 있는 한 감추겠습니다만, 그래도 아주 안 건드릴 수는 없습니다.)


사라 워터스의 [리틀 스트레인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 소설이 동성애 로맨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배신이라고 실망한 독자들도 있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옹호하는 팬들도 있었다지만, 워터스는 별다른 생각이 있어서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니라고 합니다. 어쩌다보니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졌고 거기엔 그냥 동성애 로맨스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던 거죠. 이해할만한 일입니다. 우리가 지넷 윈터슨이나 엠마 도노휴, 알리 스미스에게 동성애 소설만 기대하는 게 아니라면 워터스에게도 같은 대접을 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리틀 스트레인저]의 장르는 고딕 호러입니다. 전통적인 귀신 들린 집 이야기지요. 시대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1947년. 시골의사 패러데이는 복통에 걸린 하녀를 치료하기 위해 몰락해가는 마을의 대저택 헌드레즈 파크를 찾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헌드레즈 파크의 하녀 출신이었고, 그는 이 저택에 대해 언제나 복잡한 기억을 품고 있었죠. 그는 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돌아온 막내 로더릭을 치료하기 위해 헌드레즈를 계속 방문하게 되고 로더릭의 노처녀 누나인 캐롤라인과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는 동안 헌드레즈에는 괴상한 일들이 일어나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일어나고, 수수께끼의 낙서들이 나타나고...


호러 소설 작가로서, 워터스는 신중합니다. 이 소설에는 수많은 섬뜩한 장면들이 등장하지만, 작가는 효과를 위해 이들을 과장하지는 않아요. 이 소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폴터가이스트를 다룬 논픽션 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례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패러데이는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동안 단 한 번도 초자연현상을 목격한 적 없기 때문에, 이 현상들은 모두 다른 이론들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워터스는 [리틀 스트레인저]를 몇 겹으로 겹쳐진 반전도형처럼 짰습니다. 초자연현상의 등급에 따라 최소한 네 가지 설명이 동시에 가능하죠. 작가는 끝까지 정답을 제공하지 않지만, 두 번째 정도를 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패러데이 캐릭터는 워터스의 소설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조금 튀어 보입니다. 남자라서? 그렇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튀는 것은 그의 활용법이죠. 워터스의 나레이터들은 투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독자들에게 숨기는 게 없었죠. 하지만 패러데이는 그들만큼 투명하지는 않습니다. 이 사람은 거짓말쟁이가 아니에요.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그가 ‘초자연현상에 회의적인 냉철한 과학자’ 캐릭터에서 상당히 많이 벗어나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 캐릭터에 필수적인 객관성이 점점 붕괴되는 것이죠. 그러다보면 독자들은 그의 솔직담백한 고백 밑에 다른 동기가 있지 않은가 의심하게 되고, 클라이맥스를 넘어서면 더 이상 그를 믿지 않게 됩니다. 방향만 반대일 뿐, [나사못 회전]의 가정교사와 별 다를 게 없는 거죠.


워터스의 다른 모든 소설들이 그렇듯, [리틀 스트레인저]도 계급의 이야기입니다. 캐롤라인, 로더릭, 그들의 어머니인 에이어스 부인으로 구성된 헌드레즈 파크의 사람들은 몰락해가는 시골 젠트리 가족을 대표합니다. 패러데이의 입장은 조금 더 복잡합니다. 그는 노동자 계급 출신이지만 더 이상 그 계급에 속해 있지 않고, 무너져 가는 젠트리 계급에 대한 질시와 갈망을 동시에 품고 있지요. 캐롤라인에 대한 그의 사랑 역시 이런 감정 위에 얹혀 있습니다. 이런 복잡한 동기와 감정은 패러데이가 자신과 주변을 올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소설은 국가의료보험제가 시작되는 1948년 이전을 배경으로 잡고 이들이 속해있는 영국 시골 사회를 정교하게 묘사합니다. 패더데이의 관점은 그리 폭넓은 편이 아니지만 정확하고 집요하죠. 그런 그와 주변 세계를 그리는 워터스의 집중력 역시 마찬가지고요. 특히 캐릭터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무르익는 시골 무도회 에피소드의 정교함과 무게는 상당합니다. 자기가 그리는 세계를 제대로 알고 있는 작가의 작품이죠. 


물론 [티핑 더 벨벳]이나 [핑거스미스]의 달달한 로맨스를 기대하고 이 소설을 읽으면 실망스러울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어피너티] 때처럼 읽고나서 먹먹해지지는 않아요. 적어도 처음부터 대단한 해피엔딩의 환상을 품고 이 책을 읽을 독자는 없을 테니까. 그런 독자들은 워터스의 차기작을 기대하면 될 것이고. (10/10/04)


기타등등

이 소설에 정말 동성애자 캐릭터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해석의 여지는 충분해요. 오히려 고정독자들은 다른 식으로 생각하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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