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레이지 Outrage (1950)

2015.06.07 00:56

DJUNA 조회 수:4986


아이다 루피노의 [아웃레이지]는 성폭행을 본격적으로 다룬 드문 고전 할리우드 영화입니다. 흔한 소재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이 주제만 집중하는 영화는 많지 않은 편이죠. 당시에 나온 영화 중에는 [조니 벨린다]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전 그 영화는 줄거리만 간신히 알기 때문에 뭐라고 말은 못하겠어요.

루피노의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스토리는 단도직입적입니다. 주인공 앤은 남자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 젊은 여성인데 집근처에서 성폭행을 당합니다. 범인은 앤이 단골인 마을 노점상이지만 범인의 얼굴을 보지 못했죠. 하여간 앤이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은 철저하게 희생자의 관점에서 거의 호러 영화처럼 묘사됩니다. 이후에 나온 이런 종류 영화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관음적인 쾌락은 전혀 찾아볼 수 없죠.

이런 영화들은 보통 범인 찾기와 복수에 매달리기 마련이지만 [아웃레이지]는 범죄 이후 앤이 입은 상흔에 더 집중합니다. 남자친구는 여전히 결혼을 원하고 주변 사람들도 친절하지만 앤은 이들의 시선을 견딜 수가 없죠. 피해자인 자신이 오히려 죄를 지은 것처럼 느껴지고 섹스에 대한 혐오감은 심해져 갑니다. 결국 앤은 정처없이 달아나다가 어느 오렌지 농장 마을에 가명으로 정착하는데, 전쟁 이후 신앙을 잃은 군종출신 목사 브루스 퍼거슨과 친구가 됩니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나아지는 것 같던 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자기에게 추근거리던 마을 남자에게 상해를 입히게 되지요.

[아웃레이지]의 주제는 후반 재판 장면에서 퍼거슨 목사의 입을 통해 전달됩니다. 목사는 앤의 성폭행범을 일종의 환자로 보고 있어요. 사회는 이 위험한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는 데에 성공하지 못했고 결국 그 성폭행범의 피해자인 앤이 가해자가 되는 연쇄반응을 일으켰다는 것이죠. 전 별로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범죄가 은유화된 질병의 증상일 수는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논리를 풀면 성폭행범과 성폭행피해자를 같은 줄에 놓게 되지요.

하지만 성폭행 피해자가 범행 이후 어떤 고통을 겪는지에 대한 꼼꼼한 기술로서 [아웃레이지]는 여전히 훌륭합니다. 전 앤이 보다 적극적으로 상흔을 극복하길 바랐지만 모든 사람이 영웅이 될 수는 없는 것이겠죠. 더 의미심장한 건 영화가 50년대 평범한 미국 여성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가정과 결혼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이 얼마나 쉽게 붕괴될 수 있는지를 과장없이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결론은 해피엔딩에 가깝지만 전 앤이 고향으로 돌아가 이전의 삶을 계속했을 거라는 확신이 안 듭니다. 그러기에 앤은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너무 많을 것을 겪었지요. (15/06/07)

★★★

기타등등
올해 여성영화제에서 상영한 루피노의 영화들은 35밀리로 상영한 [천사들의 장난]과 블루레이로 상영한 [히치하이커]를 제외하면 화질이 굉장히 나빴어요. 분명 더 나은 소스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웃레이지]의 경우는 종종 TCM 로고까지 나오더군요.


감독: Ida Lupino, 배우: Mala Powers, Tod Andrews, Robert Clarke, Raymond Bond, Lillian Hamilton, Rita Lupino, Hal March, Kenneth Patterson

IMDb http://www.imdb.com/title/tt004282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39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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