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날 Kanał (1957)

2015.04.11 23:28

DJUNA 조회 수:2510


[카날]은 안제이 바이다의 두 번째 장편영화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그의 삼부작 중 2번째 영화이기도 하고요. 폴란드 영화사 최초로 바르샤바 봉기를 다룬 작품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독일군에 맞서 싸우는 용감한 폴란드인들을 다룬 영웅담처럼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미래를 예언하는 불길한 내레이션부터 수상쩍어요. 캐릭터들은 의욕이 없고 일원인 작곡가가 피아노로 두들겨 대는 음악은 오히려 신경을 거스를 뿐입니다. 그럴싸한 전쟁 액션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배우들은 이 액션을 '영웅적'으로 꾸밀 생각이 없습니다.

그럭저럭 통상적인 전쟁물처럼 흐르던 영화의 무대는 3분의 1 지점에서 바르샤바의 하수도(영화의 제목입니다)로 옮겨갑니다. 독일군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군인들과 민간인들이 독일군을 피해 하수도로 탈출하려 하는 거죠.

하수도로 무대를 옮겨도 여전히 전쟁 액션물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소재로 삼은 바르샤바 봉기의 실제 역사가 가능성을 막죠. 무엇보다 바이다는 그런 액션 자체에 관심이 없습니다. 앞의 전쟁장면도 의무감에 억지로 찍은 것 같아요.

바이다가 그리는 하수도는 말 그대로 지옥입니다. 당연히 단테가 의무적으로 인용됩니다. 독일군이 터트린 가스 때문에 사람들을 죽어나가거나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흩어진 사람들은 길을 잃고 길을 찾은 사람들도 철창에 막히거나 기다리고 있던 독일군에게 체포됩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해피엔딩을 맞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당연히 영웅주의 따위는 하수도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증발되어 버립니다.

영화가 만들어진 50년대에 이런 암담한 묘사 자체는 그렇게까지 도전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공산주의 정부는 바르샤바 봉기에 부정적이었으니까요. 실제로 그 시스템 안에서 이 영화는 잘못된 리더십이 낳은 예고된 비극이라는 식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건 사실이기도 하고요. 이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 상당수는 실제 바르샤바 봉기의 참여자였고 바이다 역시 레지스탕스 경험이 있었으니 몰라서 사실을 잘못 그리거나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정치적 메시지보다 바이다가 이 소재를 갖고 별다른 방해 없이 표현주의적인 악몽을 구사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게 어느 정도 의도적이었는지는 몰라요. 원래는 사실적인 역사물을 의도했는데 10년 뒤에 그 끔찍한 기억을 되살리면서 그 재료로 의도하지 않았던 악몽을 재구축했을 가능성도 커요. 물론 작정하고 '폴란드식 예술영화'가 된 부분도 없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런 경험을 어떻게 무덤덤하게 그릴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기억은 그런 사실의 합보다 더 큰 걸 담고 있었을 텐데. (15/04/11)

★★★☆

기타등등
영화에 나오는 폐허는 모두 진짜입니다. 50년대까지만 해도 제2차 세계대전 때 붕괴된 폐허가 꽤 남아있었다고 해요.


감독: Andrzej Wajda, 배우: Teresa Izewska, Tadeusz Janczar, Wienczyslaw Glinski, Tadeusz Gwiazdowski, Stanislaw Mikulski, Emil Karewicz, Vladek Sheybal, 다른 제목: Sewer

IMDb http://www.imdb.com/title/tt0050585/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9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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