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번째 날 The 27th Day (1957)

2012.12.25 17:28

DJUNA 조회 수:5862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7번째 날]은 냉전시대 미국에서 쏟아져 나온 저예산 SF영화들 중 하나입니다. 지금은 거의 잊혀지고 있지만, 최근에 DVD나 텔레비전을 통해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IMDb에 예상외의 수작이라며 감상평을 올리고 있더군요. 궁금해서 봤는데... 글쎄요. 전 SF 영화에 반영된 냉전시대 공포증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지만 이 영화에 대해서는 좀 움찔하게 되더군요.

아이디어는 이렇습니다. 영국, 미국, 독일, 중국, 소련에서 각각 한 명씩 외계인의 우주선에 납치됩니다. 인간 모습을 한 외계인은 자기네 태양계의 항성이 곧 신성이 되어 고향별이 파괴될 운명이라며 지구에 이주하겠다고 하죠. 단지 지성을 가진 존재를 멸망시키는 것이 자기네 윤리와 맞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들에게 세 개의 캡슐 담긴 상자를 줍니다. 그 상자는 오로지 주인의 생각으로만 열 수 있어요. 그리고 아무나 캡슐에 대고 경도와 위도를 말하면 그를 중심으로 3천 마일 주변의 사람들이 몽땅 죽습니다. 단지 주인이 죽으면 기능은 파괴됩니다. 지구인들이 알아서 스스로를 멸망시키는 것은 윤리규칙에 어긋나지 않는 모양이지요?

지구로 돌아오자, 영국인인 이블린 윙게이트는 상자를 곧 바다에 집어던집니다. 중국인인 수 탄은 할복자살을 하고요(이 사람들은 중국과 일본을 헛갈리고 있는 거 아냐?) 독일인 과학자 클라우스 베흐너는 교통사고를 당해요. 소련인 군인 이반 고도프스키는 비밀을 지키려다가 체포당합니다. 미국인 저널리스트 조나단 클락은 상자를 버리자마자 미국에 온 이블린과 함께 사람들을 피해 달아나면서 연애질을 합니다.

이 아이디어가 과연 먹히는 것일까요? 전 모르겠습니다. 지성체를 파괴하는 것이 윤리에 어긋난다면서 자멸시킬 수도 있는 무기를 주는 외계인은 도대체 뭐랍니까? 게다가 이 아이디어로 도대체 어떻게 이야기를 풀죠? 실제로 영화도 잘 모릅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이블린과 조나단 커플의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 것도 그 때문이죠.

위에서 전 영화의 이야기가 같은 시대에 나온 다른 SF 영화들보다 오싹하다고 했습니다. 이유를 말씀드리죠. 보통 냉전시대 영화에서는 공산주의나 기타 타자들이 외계인이나 돌연변이 괴물이라는 비유를 통해 그려지잖습니까? 이 영화에서는 그냥 직설적으로 나갑니다. 이 영화의 괴물은 고도프스키를 고문해 그의 캡슐을 빼앗아 미국을 멸망시키려는 소련 장군입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선제공격. 독일인 베흐너는 캡슐들을 가지고 '인류 자유의 적들'이 살고 있는 곳들을 공격합니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모스크바죠. 아시겠습니까? 냉전시대 공포증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SF 도구를 소망충족 판타지로 이용해서 적국 사람들을 몰살시키는 건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까! 더 웃기는 건 이 소동이 외계인의 테스트였고 그 학살을 통해 인류가 그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거... 아, 뭐야! (12/12/25) 

★★

기타등등
1. 중국인 수 탄 역은 마리 치엔이라는 배우가 연기하는데, 당당히 다섯 나라의 대표 중 한 명인데도 크레딧에는 이름도 안 나온답니다.

2.조 만틀리라는 작가가 쓴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입니다. 원작도 이랬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작가 자신이 각색에도 참여했으니...

3. 가끔 나오는 UFO 장면은 [지구 대 비행접시]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감독: William Asher, 배우: Gene Barry, Valerie French, George Voskovec, Arnold Moss, Stefan Schnabel, Ralph Clanton, Friedrich von Ledebur, Paul Birch, Azemat Janti, Marie Tsien, 

IMDb http://www.imdb.com/title/tt0050085/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3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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