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시선 The Look of Silence (2014)

2014.10.13 00:57

DJUNA 조회 수:6620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액트 오브 킬링]은 그 자체로 거의 완벽한 걸작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편을 요구하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그 영화를 지배하는 환상적인 광기는 사실 인도네시아 군부 대학살이라는 소재를 다룬 보다 직설적이고 정통적인 다큐멘터리로 가는 우회로였지요.

[침묵의 시선]은 바로 오펜하이머가 원래 만들고 싶었을 바로 그 영화입니다. 영화는 가해자들을 떠나 이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인 희생자들의 관점으로 돌아갑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아디라는 40대의 안경사입니다. 그에겐 당시 학살로 무참하게 살해당한 람리라는 형이 있습니다. 그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라 그는 형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형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 죽음이 가족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잘 알고 있어요. 이게 그는 새 안경을 맞추어준다는 이유로 가해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에게 당시 이야기를 듣습니다.

전작에서 굉장히 입체적으로 그려진 몇몇 악당들을 만났던 터라, 이번에도 그런 인물들을 기대하는 관객들도 있을 겁니다. 심지어 아디 역시 그런 기대를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초반에 그는 당시 학살을 자랑하는 인물들의 비디오 클립을 보면서 그런 과시가 죄의식을 감추기 위한 제스처일 가능성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건 당연한 기대입니다. 그런 가능성이 있어야 속죄와 참회라는 반응이 따라올 테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는 그 가능성을 굳이 파려 하지 않습니다. 오펜하이머는 아마 [액트 오브 킬링]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전편의 주인공이었던 안와르 콩고와 같은 인물은 극소수였겠죠. 그 극소수의 인물의 외피를 벗기는 데에도 영화 한 편이 필요했던 거고요. 이 영화의 선악구도는 단순합니다. 잔인무도한 살인마들과 무고한 희생자들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영화는 전작보다 소품처럼 보이지만 그건 당연한 것이죠.

울분 터지는 영화입니다. 예상대로 아디가 인터뷰하는 학살자들은 조금의 죄의식도 느끼지 않습니다. 여전히 아무런 벌도 받지 않고 잘 살고 있는 그들은 자신의 당시 행동을 옹호하며 아디를 협박하고 욕하고 비난합니다. 그건 그들을 부모로 둔 자식들도 마찬가지. 그나마 받아낸 사과도 엎드려 절받기라 별 감흥이 없죠.

영화는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한 나라가 어떻게 지옥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엉터리 역사를 가르치고 정의는 희생자들의 시체와 함께 땅속에 묻혔으며 가해자들은 여전히 희생자들 위에 군림합니다. 도저히 남의 이야기로 볼 수 없는 것이, 이 영화를 보며 느끼게 되는 강한 기시감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 모로 [액트 오브 킬링]보다 단순한 영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미나 깊이가 덜한 작품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캐릭터가 좋아요. 전편에서 그랬던 것처럼 오펜하이머는 영화를 위해 완벽한 사람들을 찾아냈습니다. 아디와 아디의 가족들은 카메라 앞에서 놀랄만큼 생생한 캐릭터로 다가오는 인물들입니다. 몇몇 상징들은 인위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그런 걸 굳이 지적할 생각이 들지 않아요.

부산에서 있었던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서 오펜하이머는 인도네시아를 다룬 자신의 영화는 이 두 작품이 끝이고 세 번째 작품이 나온다면 그것은 인도네시아 사람들 자신이 직접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아직까지 이 두 편의 영화가 인도네시아에서 정식으로 상영되지 못했고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이 안전을 이유로 익명을 내세우는 지금을 고려해보면, 그 세 번째 영화가 나오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그 기다림을 멈추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요. (14/10/13)

★★★★

기타등등
1. 감흥이 없다곤 했지만, 학살자들 중 한 명의 딸은 그래도 자기 입장에선 최선을 다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아버지의 물려준 굴레를 스스로 벗지 않는다면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겠지요.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그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2. 전편보다는 종교에 대한 비판이 더 많이 들어갔더군요. '그 사람들이 신을 믿지 않는 것 같다'라는 소문을 들었다는 게 그런 대량 학살의 당연한 핑계가 될 수 있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제도권 종교의 존재 이유가 뭡니까.


감독: Joshua Oppenheimer

IMDb http://www.imdb.com/title/tt352113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8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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