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의 9일 9 dney odnogo goda (1962)

2012.05.09 00:57

DJUNA 조회 수:6020


드미트리 구세프와 일리야 쿠릴코프는 시베리아의 연구소에서 핵융합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드미트리는 연구에 온몸을 바치는 열성파 실험물리학자이고, 일리야는 인류의 미래에 냉소적인 이론물리학자죠. 그들은 모두 같은 연구소 동료인 룔랴를 사랑합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그 때까지 드미트리의 여자친구였던 룔라는 연구 때문에 자신에게 소홀한 드미트리를 버리고 일리야와 떠날 생각이죠. 하지만 드미트리가 연구소 사고로 치명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양의 방사능을 쐬게 되면서 생각이 바뀝니다. 룔랴와 드미트리는 결혼하지만, 더 이상 방사능을 쐬게 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드미트리는 위험한 실험을 계속합니다. 영화는 이들이 겪은 1년 중 아홉 날을 연구용 샘플처럼 추려내어 관객들에게 보여줍니다.

멜로드라마입니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 남자들은 친구이고, 여자 주인공이 둘 중 누구를 선택하느냐는 드라마에서 중요합니다. 하지만 미하일 롬의 [1년의 9일]은 예상 외로 연애 이야기에 집중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연애와 결혼은 그들 삶의 중요한 일부로 남아 있지만, 진짜로 중요한 것은 그들의 연구입니다. [1년의 9일]은 SF가 아니면서 과학자들의 일상적인 업무를 스토리의 중심에 놓는 드문 대중영화입니다. 아마 소련이라 이런 게 가능했겠죠.

영화는 핵융합 연구 과정과 과학자들의 일상을 꼼꼼하게 추적합니다. 이 묘사가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소재에 대한 제 지식이 짧고 60년대 당시의 지식과 상황은 지금과 또 달랐을 거니까요. 하지만 연구 과정의 매커니즘, 그에 따른 위험과 헌신, 그에 따른 철학적, 사회적 토론을 이처럼 상세하게 다룬 영화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에는 당시 소비에트 러시아 냄새가 풀풀 납니다. 드미트리처럼 자신의 임무에 확신을 갖고 몸과 마음을 바치는 주인공의 모습은 당시 영화에서 흔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를 그냥 냉소적으로 볼 수는 없으니, 그의 영웅적인 모습 뒤에 숨어 있는 일상적 비극성은 여전히 사람 마음을 울리는 구석이 있죠.

그래도 낙천적인 영화입니다. 영화가 그리는 당시 과학자들의 낙천성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합니다. 이 사람들은 딱 십여 년 안에 핵융합 기술을 발명하고 은하계로 날아갈 우주선을 만들 것처럼 행동하고 있으니까요. 둘 중 어느 것도 이루지 못한 21세기의 관객들은 그들에게 미안할 지경입니다.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은 룔랴입니다. 조금 따로 노는 구석이 있긴 한데, 이 역시 재미있긴 합니다. 5,60년대 소련 지식인 여성의 위치와 생각, 그리고 그들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편견을 볼 수 있는 기회지요. 영화 속에서 룔랴는 물리학자입니다. 하지만 영화 내내 물리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오로지 남자들 뿐이죠. 영화 내내 룔랴는 오로지 자신과 두 남자의 관계에 대해서, 자신의 결혼생활에 대해서만 말하고 생각합니다. 아닌 경우에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없어 위축되어 있고요. 형식적으로는 평등한 결혼 생활 중에서도 가사는 모두 룔랴의 몫. 남편이 아프니까 이해는 해주려 했는데, "왜 남자는 밥을 먹는 거지!"라는 룔랴의 짜증섞인 독백을 들으면 이건 그냥 일반적인 소련 부부의 묘사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영화의 결말은 예상 외로 절제되어 있습니다. 드미트리의 상태와 입장을 보면, 과학 이야기로건, 멜로드라마로건 센 이야기를 한 방 터트릴 법도 한데, 영화는 둘 중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아요. 힘주지 않고 무심하게 끝을 맺는 태도 때문에 제 주변 관객들은 당황하더군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야기 전체와 어울리는 꽤 멋진 결말인 것 같습니다. (12/05/09) 

★★★

기타등등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봤습니다. 일본어 자막이 옆에 붙어 있는 필름으로요. 하지만 유튜브에서도 공짜로 보실 수 있습니다. 여기로 가보세요. 영어 자막 있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e6H-9xk2nb8&feature=youtu.be


감독: Mikhail Romm, 출연: Aleksey Batalov, Innokenti Smoktunovsky, Tatyana Lavrova, Nikolai Plotnikov, Sergei Blinnikov, Evgeni Evstigneev, Mikhail Kozakov,  다른 제목: Nine Days of One Year

IMDb http://www.imdb.com/title/tt0054803/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4542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