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침략자]에서 가장 재미있는 건 제목이에요. '산책'의 한가한 느낌과 '침략자'의 사나운 느낌은 전혀 어울리지 않으니까. 이 둘을 어떻게 합치려고 그러나요?

정작 아이디어를 듣고 나면 별 재미가 없습니다. 여기서 '산책하는 침략자'는 외계인이에요. 어디서 왔는지, 이유는 뭔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외계인 세 명이 일본에 내려와 일본인 세 명의 몸 속에 들어갔어요. 이들이 동료들에게 연락을 취하면 침략이 시작돼요. 인류를 몰아내고 지구를 점령할 때까지 한 사흘 정도 걸린다는군요.

그럼 산책은? 아, 외계인 세 명 중 하나가 주인공 나루미의 남편 신지의 몸 속으로 들어갔어요. 신지 속 외계인은 동네를 산책하며 사람들을 만나 정보를 뽑아내요. 영화 속 대사에 따르면 '개념'을 수집하는 거죠. 외계인에게 그 개념을 주면 준 사람은 그 개념을 잃어버리고. 그런데 이게 그 사람들에게 꼭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 중 몇 명은 오히려 그 때문에 해방감을 느끼는 거 같고. 그러는 동안 두 틴에이저 아이들의 몸 속에 들어간 다른 외계인들은 임무를 수행하느라 조금 더 바쁩니다. 그들에겐 사쿠라이라는 주간기 기자가 따라붙습니다. 이들에 나루미와 사쿠라이는 가이드입니다.

그러니까 50년대 할리우드에서 지나치게 많이 나왔던 변신외계인 SF에 일본식으로 감상적이고 엉뚱한 멜로드라마를 섞은 것입니다. 외계인이 지구를 점령하려는 순간이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까지 위기를 강조하지 않아요. 외계인들과 가이드의 관계 묘사가 더 중요하죠. 멸망의 징조가 여기저기 보이지만 주요 사건은 일상적이고 평온해요.

영화의 매력 포인트는 당연히 이 어울리지 않는 소재와 스타일의 충돌이 빚어내는 엉뚱함이었겠죠. 하지만 저에게 이건 그렇게까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그러기엔 너무 속이 보이고 얄팍하니까요. '개념을 수집하는 외계인'이라는 아이디어는 글로 쓰면 재미있어 보일 수 있겠지만 결국 교훈 얻고 모두가 조금씩 착해지는 일본식 판타지의 기성품 틀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아요. 막판에 '사랑'을 내세울 때는 '이렇게 나이브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고요. 왜 이런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은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이 '사랑'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게 비밀스럽고 지구스럽고 그런가요. (18/08/17)

★★☆

기타등등
마에가와 토모히로라는 작가가 쓴 동명 희곡이 원작이라는데 얼마나 충실한지는 모르겠어요. 구로사와 기요시는 이 원작으로 드라마도 만들었다는데 역시 좀 다른 거 같고.


감독: Kiyoshi Kurosawa, 배우: Masami Nagasawa, Ryuhei Matsuda, Hiroki Hasegawa, Mahiro Takasugi, Yuri Tsunematsu, Atsuko Maeda, 다른 제목: Before We Vanish

IMDb https://www.imdb.com/title/tt5999530/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9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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