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료 (1940)

2014.10.30 22:54

DJUNA 조회 수:4623


최인규의 두 번째 영화 [수업료]의 필름이 중국전영자료관에서 발견되어 10월 25일에 영상자료원에서 일반 관객들에게 공개되었습니다. 9월 16일에 먼저 언론시사회가 있었지만 전 늦잠 자느라고 못 갔죠.

경성일보의 경일소학생신문 공모에서 조선총독상을 받은 광주 북정 소학교 4학년 우수영 어린이의 작문이 원작입니다. 이를 야기 야스타로가 각색하고 유치진이 한국어 대사를 맡아 각본이 완성되었죠. 원래는 최인규가 감독을 맡았는데, 10월 쯤에 발병해서 방한준이 완성했다고 하고요.

동북아시아에선 친숙하기 짝이 없는 가난한 어린이 주인공 멜로드라마입니다. 이제는 우영달이라는 이름의 수원 소년으로 바뀐 주인공은 병약한 할머니와 단 둘이 허물어져 가는 집에서 살고 있어요. 엄마 아빠는 돈 벌러 외지로 나갔고요. 불우한 환경에도 우리의 영달 소년은 모범생이고 공부도 잘 하지만 그만 수업료를 낼 돈이 없습니다. 맘씨 좋은 일본인 교사 아저씨가 수업료로 쓰라고 돈을 내주지만 그것도 방세로 날아가 버립니다. 영달의 유일한 희망은 평택에 사는 이모입니다. 차비도 없어서 돈을 빌리려면 수원에서 평택까지 걸어 가야 하죠.

척 봐도 내선일체를 주장하는 친일영화입니다. 너무 명명백백해서 이를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이 귀찮을 지경이죠. 그러나 [수업료]라는 영화에서 가장 짜증나는 부분은 이 작품의 질입니다. 정말 잘 만들었어요. 옛날 영화치고 잘 만든 게 아니라 그냥 잘 만든 영화입니다 이후에 비슷한 소재로 나온 한국 멜로드라마들과 비교해도 훨씬 뛰어납니다. 불필요한 신파도 없고 사운드나 음악도 훨씬 잘 쓰였지요. 뻔한 선전 영화 소재인데도 그런 선전 영화의 내용을 품에 안고서도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진한 멜로드라마를 만들어냈던 겁니다. 그가 해방 이후 만든 [자유만세] 같은 영화에는 이런 깊이가 없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자유만세]야 말로 뻔한 선전 영화 같죠. 주제와 내용이 잘 붙지 않고, 설교만 잔뜩 늘어놓는 주인공은 재수 없고. 이러니 최인규에 대한 변명이 전혀 와닿지가 않는 겁니다. 이런 영화는 수동적으로 만들어서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물론 이 영화를 보는 지금 관객들의 감상은 당시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감상은 25일에 극장을 찾았을 수도 있는 영달 소년과 같은 세대 관객들이 느끼는 감상과도 다르죠. 특히 겁에 질린 영달 어린이가 일본 군가를 부르면서 평택까지 이어진 시골길을 걸어가는 장면은 뭉클하면서도 오싹합니다. 저렇게 완벽한 황국의 신민으로 교육받은 똘똘한 아이들이 박정희 시절 어른들이었던 거예요. (14/10/30)

★★★☆

기타등등
다음 지도로 확인해보니 수원에서 평택까지는 40킬로미터 정도 되더군요. 당시엔 더 길었을 수도 있고.


감독: 최인규, 방한준, 배우: 정찬조, 복혜숙, 전택이, 김신재, 문예봉, 다른 제목: Tuition Fee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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