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트 (2019)

2019.07.17 18:43

DJUNA 조회 수:8879


몇 년째 취업 실패로 놀고 있는 용남은 어머니 칠순 잔치에 갔다가 연회장 부점장으로 일하는 대학 산악 동아리 후배 의주를 만납니다. 동아리 시절 용남은 의주에게 사귀자고 했다가 거절당한 적 있지요. 용남은 어떻게든 다시 수작을 걸려고 어설픈 시도를 하는데, 그만 연회장이 있는 신도시에 가스 테러가 일어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이 테러입니다. 이상근의 [엑시트]는 비교적 밝은 영화예요. 코미디 비중도 높고요. 하지만 상황을 보면 거의 전쟁 수준의 사상자가 났을 가능성이 큽니다. 들이마시면 수 분 만에 죽는 유독 가스가 도심가 전체를 덮었다고요. 아무리 영화가 밝게 나가도 이 생각이 자꾸 들어와 분위기를 깨요. 영화도 이를 알고 있어서 사상자 언급을 잘 안 합니다. 죽은 사람들도 잘 안 보여줘요.

영화 바깥에서 죽어나간 사람들을 잠시 잊는다면, [엑시트]는 효율적인 비디오 게임의 설정을 깔고 있습니다. 유독가스는 공기보다 무겁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마스크는 10분에서 15분 정도밖에 효과가 없습니다. 폭발지점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가스는 낮게 흐르지만 언제 2차 폭발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이 기본 설정 안에서 영화는 두 주인공에게 다양한 미션을 줍니다.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옥상문을 연다거나, 올라오는 가스를 피하기 위해 건물 옥상에서 더 높은 다른 건물로 올라간다거나. 아주 세련되거나 기교적이지는 않지만, 영화는 일단 발동이 걸리면 끝날 때까지 액션을 멈추지 않습니다.

최근 나온 한국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엑시트]는 여러 모로 건강한 영화입니다. 일단 성비가 괜찮습니다. 여전히 용남 위주로 진행되지만 중반 이후로는 의주도 주인공이니까요. 한국영화 특유의 개저씨 악당도 없고 억울함과 분노도 없습니다. 누군가를 제압하는 폭력도 없고 불쾌한 마초이즘의 과시도 없습니다. 오로지 기술과 경험, 어느 정도의 체력이 있지만 아주 전문가는 아닌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만 있어요. 이 '생존'에는 주변 사람들의 '생존'도 포함하기 때문에, 주인공들은 여러 윤리적 선택을 해야 하는데, 영화는 이들을 쓸데없이 영웅으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이 선택을 잘 처리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두려움도 감추거나 무시하지 않고요. 로맨스를 포기하지는 않지만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액션을 방해할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조정석과 임윤아는 자기들이 가장 잘 하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용남은 익숙한 모양으로 찌질거리고 의주는 맑고 씩씩하지만 가끔 명랑영화 캐릭터 같습니다. 대역과 특수효과가 들어갔겠지만 이들은 모두 몸을 잘 쓰는 편이라 액션에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들 주변의 조연들은 모두 전형적인 K 무비 스타일 캐릭터들인데, 너무나도 익숙한 신파적 상황인데도 그 정도면 관리를 잘 한 것 같습니다. 영화 밖의 사상자를 잠시 잊는다면 불쾌함 없는 여름 킬링 타임 오락물로서 [엑시트]는 만족스럽습니다. (19/07/17)

★★★

기타등등
엔드 크레디트는 챙겨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중반에 이야기의 구멍을 설명해주는 쿠키가 나와요. 전 이게 그냥 본 영화에 삽입되었다면 좋았을 거 같지만.


감독: 이상근, 배우: 조정석, 임윤아, 고두심, 박인환, 김지영, 다른 제목: Exit

Hancinema https://www.hancinema.net/korean_movie_Exit_-_Movie.php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74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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