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 (2019)

2021.01.30 21:57

DJUNA 조회 수:2308


이인의 감독은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을 보고 왔습니다. 이 영화는 2017년에 만들어 통일부 제작지원 옴니버스 영화 [그리다]에 수록된 감독의 단편과 제목이 같습니다. 원래는 장편 각본을 먼저 썼는데, 그 중 일부인 앵두 할머니의 이야기를 단편으로 각색해 2017년 통일부 공모전에 지원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같은 해에 영화진흥위원회의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되어 장편을 찍을 수 있었고요. 사연이 대충 이렇게 됩니다.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남자 주인공인 민규는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현장을 뛰고 있는 독립 영화인입니다. 하는 일은 재미있고 좋지만 돈이 안 들어오고 미래도 안 보여 고민 중입니다. 여자 주인공인 한나는 유학파 피겨 스케이트 선수인데 얼마 전에 선수 생활을 그만두었다가 영어 동시 통역가로 민규가 일하는 다큐멘터리 팀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한나는 위에 언급한 앵두 할머니의 손녀이기도 해요. 민규는 다른 다큐멘터리 작업도 하고 있는데, 그건 콜텍 노동자들의 시위를 담는 것이죠.

두 사람은 영화 내내 바쁩니다. 주인공들 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바빠요.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선 일은 안 하고 연애만 한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영화에서는 해당사항이 안 됩니다. 다큐멘터리 작업과 이 작업에 대한 고민이 영화의 5분의 4는 되는 거 같아요.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량도 많습니다. 특히 해외입양에 대해서는요.

문제는 이 구조가 극영화라는 매체에 잘 어울리느냐는 것입니다. 콜렉 노동자들의 투쟁이나 해외입양 이야기는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들의 애환을 담는 소재로 남기엔 지나치게 무겁고 큽니다. 콜텍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독립된 다큐멘터리로 독립시키는 게 가장 좋고 (하지만 이미 이 소재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해외입양 이야기도 다큐멘터리로 만들거나 주인공이 드라마에 보다 깊이 개입하는 드라마로 만드는 게 가장 좋았겠지요. 지금은 극영화의 주인공들이 소재의 무게와 부피에 치여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습니다. 종종 이들은 교양 프로그램의 연예인 패널처럼 보여요. 물론 제가 제시한 대안에서는 이 영화가 가진 개성이 날아가버리긴 한데, 지금도 이 개성이 그렇게 잘 산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 나쁜 소리를 할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선량한 사람들이 나와 중요한 이슈를 다루는 진지한 영화인 걸요. 이 장점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최종 결과물은 이 장점을 제대로 살리고 있지 못해요. (21/01/30)

★★☆

기타등등
1. 콜텍 시위를 담은 이 영화의 첫 각본은 2013년에 나왔고 영화의 시대 배경은 2018년입니다. 5년 동안 상황이 거의 안 바뀐 것입니다. 오싹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후반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지어지긴 했고 이는 엔드 크레딧에서 언급됩니다.

2. 앵두 할머니는 너무 젊습니다. 한국전쟁 때 남편과 헤어진 사람이라면 아무리 젊어도 80대 후반이어야 해요. 종종 사람들이 한국전쟁이 얼마나 옛날에 일어났는지 잊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 그리고 앵두 할머니를 연기한 강애심은 63년생입니다.


감독: 이인의, 배우: 은해성, 오하늬, 이서윤, 장준휘, 김지나, 주보영, 강애심, 조윤희, 다른 제목: The ABCs of Our Relationship

Hancinema https://www.hancinema.net/korean_movie_The_ABCs_of_Our_Relationship.php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91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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