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적인 남자 (2018)

2018.10.26 23:36

DJUNA 조회 수:6337


두 스케줄 사이가 비어서 사전정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이, 기적인 남자]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부산에서 찍은 독립영화인데 보고 나서 좀 짜증이 났고 화도 좀 났습니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소재와 주제를 끌어가는 방식이 영 맘에 안 들었어요.

남자주인공은 부산의 모 대학 영연과 교수입니다. 여자 학생들에게 제법 인기있는 40대인데, 막 같은 과 여자 조교에게 작업을 걸려다가 실패했습니다. 그러다 같은 대학 행정과에서 일하는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남자는 아내를 미행하게 되는데, 3분의 2 지점에서 아내의 애인이 자기가 작업을 걸려다 실패했던 여자 조교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관객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요.

흔한 이야기입니다. 남자를 엿먹이고 조롱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선정적인 판타지이기도 하죠. 그러나 중요한 건 어떤 소재를 가져왔느냐가 아니라 그 소재를 어떻게 쓰느냐입니다.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세 등장인물 중 가장 재미없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조교가 주인공이었다면 이 이야기는 미투 시대를 완벽한 타이밍에 다룬 블랙 코미디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내가 주인공이었다면 자기중심적인 남편과의 결혼생활 속에서 시들어가던 여자가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는 전통적인 로맨스가 될 수 있었지요. 하지만 남편이 주인공이 되자 러닝타임 내내 억울해하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는 한남 원맨쇼가 되었습니다. 불쾌한 인물이라도 보면서 재미있을 수 있는데, 이 남자에겐 비웃는 재미도 없어요. 그냥 멀리하고 싶은 부류죠. 그런데도 왜 이 남자가 주인공이 되어야 했을까? 여자들을 깊이 다루는 게 불가능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짰기 때문이 아닐까요.

더 큰 문제는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자기네가 다루는 주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기적인 남편을 떠나는 것과 자신의 성적지향성을 깨닫는 건 동시진행될 수 있지만 결국 다른 이야기입니다. 후자가 더 중요하지만 영화는 여기에 대해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하긴 아는 게 없을 테니. 더 큰 문제는 영화가 남자의 문제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인 바람둥이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 정도가 아니에요. 남자가 조교에게 하려고 한 일은 위계에 의한 성범죄입니다. 후반에는 위계고 뭐고 없습니다. 무력으로 제압하고 강간하려 하니까요. 그런데도 나오는 대사가 “남자가 하는데 여자는 왜 못해요?” 따위이니 어이가 없죠. 남자는 이미 선을 넘었어요. 끝난 겁니다. 이게 이해가 안 되나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영화는 남자에게 기회를 줍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내가 임신을 했기 때문이죠. 1년 뒤 에필로그를 보면 남자는 여자 둘과 같이 살며 살림을 하고 있습니다. 이걸 속죄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정말 그럴까요. 아니, 조교는 무슨 죄를 지었다고 자길 강간하려고 한 남자와 같이 살아야 하는 걸까요? (18/10/26)

★☆

기타등등
혹시나해서 메일함을 뒤져보니 보도자료가 꽤 왔었군요.


감독: 김재식, 배우: 박호산, 최유하, 조은빛, 황성준, 김주희, 홍윤희, 김근수 다른 제목: Mr. Egotistic

IMDb https://www.imdb.com/title/tt3104988/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7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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