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거: 유관순 이야기 (2019)

2019.03.01 23:58

DJUNA 조회 수:6566


[항거: 유관순 이야기]가 시작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유관순 이야기의 절반은 이미 끝나 있습니다. 유관순은 3.1 운동과 아우내 만세 운동에 가담했고, 체포되고 재판받았습니다. 일반적인 유관순 전기물에서 가장 공들여 그리는 '멋있는' 부분들이 잘려나간 것입니다. 이제 내리막만이 남았습니다. 고문과 죽음요. 암담한 시작 같지만 의외로 아닙니다.

영화는 둘로 나뉩니다. 일단 익숙한 유관순 서사가 계속 되는데, 그것은 애국적인 외침과 끔찍한 고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건 기독교 수난극과 비슷합니다. 고결한 주인공이 끔찍한 고통을 겪으며 죽어가는 동안 우리는 그 익숙한 이야기를 꼭꼭 씹으며 따라갑니다. 다른 하나는 유관순과 8호실 다른 죄수들과의 관계입니다. 3.1 운동에서 만세를 부른 여자들이 유관순 하나만은 아니었으니까요.

첫 번째는 당연히 필요하죠. 그게 없으면 진도가 안 나가니까요. 하지만 익숙한 이야기의 반복이기도 합니다. 장엄한 애국자의 이야기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영화화되면 대부분 그렇듯 조금씩 경직되어 있지요. 우리는 감탄하고 충격받고 고통스러워하고 마지막엔 존경심을 느끼지만 이 캐릭터에 어느 정도 거리는 두게 됩니다. 존경하는 사람들 앞에서 우린 늘 이러지요.

하지만 영화에서 진짜로 재미있는 건 두 번째 부분입니다. 8호실에 들어가 다른 죄수들을 만나는 순간부터 유관순은 박제된 영웅에서 벗어나 독립 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 됩니다. 이들 중에선 여전히 튀지만 외로운 영웅은 아니죠. 유관순은 상대적으로 평범해집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속을 열어 보입니다. 이 때문에 앞에서 경직되었다고 말했던 첫 번째 애국 신화의 파트도 생명력을 얻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사람의 공포와 고통, 희망과 꿈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까요.

조금 더 잘 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포스터를 보고 기대가 상당했거든요. 고아성의 캐스팅은 거의 완벽하지만 주변에 김새벽, 김예은, 정하담 등등이 진을 치고 있으면 이들이 영화 속에서 섞이면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길 바랄 겁니다. 그리고 그건 논리적인 기대이기도 합니다. 이들이 연기한 캐릭터들은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있고 출신이나 계급도 다르니까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지 못합니다. 자기 소개, 약간의 다툼, 약간의 위로 그리고 연대의 형성을 보여주면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금방 날아가버립니다. 아쉬워요.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역할이 미미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아쉬울 수도 있는 각본의 빈 자리를 채워주는 것이 바로 이 배우들의 존재감이니까요. 앞에서 언급한 배우들도 훌륭하지만 조연과 단역들의 존재감도 만만치 않고 이들이 8호실 세트 안에서 걷기 시작하면 정말 훌륭한 그림이 만들어집니다. 저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 이들의 이름들을 하나씩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영화가 이들의 이야기를 다 들려주지 않았다면 직접 찾아나서야지요. (19/03/01)

★★★

기타등등
비스타 비율입니다. 회상 장면과 그 외의 특정 부분을 제외하면 흑백입니다.


감독: 조민호, 배우: 고아성, 김새벽, 김예은, 정하담, 류경수, 최무성, 다른 제목: A Resistance

Hancinema https://www.hancinema.net/korean_movie_A_Resistance.php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82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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