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좀비 (2009)

2010.02.05 12:58

DJUNA 조회 수:8912

 

[이웃집 좀비]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실험 실수로 발생한 좀비 전염병으로 난리가 난 근미래를 무대로 한 옴니버스 영화입니다. 세계적 현상이지만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는 대부분 서울 안에 머물고 있지요. 네 명의 감독들이 만든 여섯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지막 [폐인 킬러]는 독립적인 에피소드보다 엔드 크레딧 시퀀스에 가깝고, 첫 번째 에피소드 [틈사이]와 두 번째 에피소드 [도망가자] 사이에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막간극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정확한 에피소드 숫자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오영두가 감독한 첫 번째 에피소드 [틈사이]는 서울에 처음으로 발생한 좀비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피겨를 수집하는 오타쿠인데, 집 구석에 있는 보이지 않는 존재의 습격을 받습니다. 그는 어떻게든 탈출하려 하지만 그 힘이 계속 그를 막지요. 그러면서 그는 점점 식인 취향을 가진 좀비로 변해갑니다.

 

에피소드의 대부분은 오타쿠/히키코모리에 대한 막연한 분석입니다. 깊이 있는 분석 대신 스테레오 타입을 재구성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지요. 그러는 동안 상징성이 지나치게 강화되어 '첫 번째 좀비 발생'이라는 사건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는 것은 큰 단점입니다.

 

역시 오영두가 감독한 두 번째 에피소드 [도망가자]는 좀비들을 주인공으로 한 로맨스입니다. 남자주인공은 아직 정신이 온전하지만 점점 좀비로 변해가는 감염자입니다. 그를 떠나지 않은 여자주인공은 결국 남자주인공처럼 감염자가 되는데, 그러는 동안에도 그들의 사랑은 꺼질 줄을 모릅니다.

 

[도망가자]는 설정만 존재하는 짧은 단편으로, 감염과정을 제외하면 특별한 스토리 발전은 없습니다. [개그 콘서트] 에피소드를 보는 것처럼 좀비가 된 뒤에도 주인공들이 벗어나지 못하는 닭살 행각을 즐기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단지 그렇게 본다고 해도 이야기가 너무 성급하게 끝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닙니다.

 

홍영근이 감독한 세 번째 에피소드인 [뼈를 깎는 사랑]의 주인공은 자신의 피와 살을 바쳐 좀비가 된 엄마를 봉양하는 효녀 딸입니다. 여기에 재수없게 말려든 특공대 요원이 개입되어 이야기는 조금 더 피를 보게 됩니다.

 

[뼈를 깎는 사랑]은 이 영화에서 가장 잔인한 에피소드입니다. 창자가 터져 나오는 장면들은 없어요. 대신 자발적인 신체 손상이 많이 나오죠. 에피소드의 도입부가 텅빈 도마를 말없이 바라보는 여자주인공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짐작되시겠죠.

 

류훈이 감독한 네 번째 에피소드 [백신의 시대]는 [이웃집 좀비]라는 영화의 세계관을 지탱하는 에피소드입니다.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인 제약회사의 과학자 데이빗 박은 자신의 몸을 희생해 백신을 만들고 이를 수거하러 온 특공대원들과 그들을 막으려는 제약회사의 킬러가 대결을 벌입니다.

 

이 에피소드의 장르는 엉뚱하게도 수퍼히어로 물입니다. 늘 가스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실험의 부작용으로 초능력을 갖게 된 데이빗 박은 전형적인 코믹북 수퍼히어로죠. 그 덕분에 영화의 소박한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사이즈가 커 보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초라해보일 수도 있겠지만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는지요.

 

장윤정이 감독한 다섯 번째 에피소드 [그 이후... 미안해요]에서 좀비병은 이미 퇴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좀비에서 다시 사람으로 돌아온 감염자들은 사회의 편견 때문에 고생이 많지요. 주인공 배용근도 그 때문에 고민이 많은데,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그의 뒤를 정체불명의 젊은 여자가 스토킹합니다. 분명히 그가 좀비였던 시절 저질렀던 일 때문이겠죠.

 

형식적으로 [그 이후... 미안해요]는 가장 진지하고 완성도 높은 에피소드입니다. 주제 의식도 강하고 드라마의 선도 뚜렷하며 배우들에게 연기할 거리도 많이 주고 있지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유희정신이 조금 죽어보이기도 합니다.

류훈이 감독한 마지막 에피소드 [폐인 킬러]는 마감에 쫓겨가며 [이웃집 좀비]의 원고를 쓰는 작가가 겪는 꿈과 같은 상황에 대한 이야기인데, 위에서 말했지만 독립된 에피소드보다는 전체 작품을 요약하는 엔드 크레딧 시퀀스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군요.

 

[이웃집 좀비]는 기술적 완성도로 평가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닙니다. 거의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상황에서 멀쩡한 장편영화를 끌어낸 사람들의 필사적인 노력이 더 재미있는 영화지요. [이웃집 좀비]는 처음부터 끝까지 빈약한 상황을 극복하고 이용하는 게임의 연속입니다. 같은 방을 에피소드마다 계속 세트로 재활용하고 있고 배우들은 일인 다역을 할 뿐만 아니라 스태프이기도 하고 감독이기도 하니까요.

 

결과보다는 노력을 보라는 말처럼 들리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게임과 그에 투자된 노력들은 영화 내용의 일부입니다. 그들은 스토리를 구성하고 형식을 결정하며 그 자체로 영화의 재미가 됩니다. 이 거칠거칠한 즐거움은 CG로 범벅이 된 대자본 장르 영화가 더 이상 우리에게 제공해주지 못하는 종류의 것이기도 합니다. (10/02/05)

 

★★☆

 

기타등등

15세 관람가입니다. 하지만 제가 본 시사회에서는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견뎌내지 못하고 떠나더군요. 특히 [뼈를 깎는 사랑]에서요. 감독들은 은근히 이를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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