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이긴다 (2015)

2015.09.15 21:15

DJUNA 조회 수:5687


민병훈 감독의 세 번째 한국어 장편영화 [사랑이 이긴다]의 주인공들은 그가 지금까지 다루었던 인물들 중 가장 사회 상층부에 속해 있습니다. 남편은 의사이고 (아마도 전업주부 같아 보이는) 아내는 외고에 다니는 우등생인 딸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딸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면 이들의 계급이 대를 이어 유지되고... 그러는 거겠죠.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남편은 조교를 성추행했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지만 그는 진심으로 억울해하고 있어요. 전 그 억울함을 믿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가 유죄라고도 믿어요. 아내는 뇌 속에 딸의 대학입시 이외의 어떤 생각도 들어있지 않은 강남 엄마 스테레오타이프로 늘 딸을 정신적으로 잔인하게 고문합니다. 이런 엄마 밑에서 자란 딸이 행복할 리가 없고요.

이들이 이런 꼴인 이유는 이해가 갑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일단 바닥까지 떨어져봐야죠. 하지만 이들의 경우는 상태가 심각합니다. 남편은 지나치게 비틀려 있고 아내는 인간적 깊이가 전혀 없습니다. 주변을 둘러 보면 이런 사람들도 있긴 있어요. 하지만 구원 받는 사람들은 구원에 대한 갈망과 그 갈망을 유지할 긍정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겐 둘 다 없습니다. 남편은 영적 구원 대신 정신상담이 필요하고 (자기도 알 걸요) 아내는 솔직히 답이 없습니다.

영화가 이들을 집어넣은 미로도 그냥 이상할 뿐입니다. 이전 민병훈 영화는 서글픈 세상에 동정어린 윙크를 던지는 신에 의해 지배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영화의 우주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존재는 무자비한 행동심리학자 같습니다. 특히 자기가 냈을 수도 있고 안 냈을 수도 있는 택시값 문제로 목숨을 거는 후반부의 남편은 보기가 고통스러울 정도입니다. 중반의 비극 이후 갑자기 20세기 동구권 아트하우스 영화의 세계로 떨어진 아내는 그냥 불청객 같고요. 그 사람에게 그런 것들을 만들어낼 내면이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차라리 아이들을 조금 더 봤으면 했지만 이들에겐 괴물 같은 부모의 희생자라는 역할 이외에 대단한 존재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들 이야기가 잘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도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중반부터는 싫어도 하나의 흐름으로 모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인데도 따로 놀아요.

지금까지 꾸준히 좋은 영화를 내왔던 예술적 접근법과 습관이 암만 봐도 이상한 실패작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아마 이 결과물은 그가 다른 길을 걸을 때가 되었다는 걸 보여주는 계시일지도 모르죠. (15/09/15)

★★

기타등등
이 영화에 나오는 고양이는 지금까지 민병훈 영화에 나왔던 동물들 중 최악입니다. 일단 묘사가 건성입니다. 길 잃은 새끼고양이를 문이 닫힌 동물병원 앞에 놓고 가는 건 그냥 동물학대고요. 그리고 언제까지 짐승들에게 이런 역할을 시킬 건가요. 그들은 인간에게 신의 계시를 전달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냥 우리와 상관없이 알아서 살아가는 것뿐이라고요.


감독: 민병훈, 배우: 최정원, 장현성, 오유진, 최민철, 황정민, 정다빈, 강신철, 홍주용, 다른 제목: Love Never Fails, Love Wins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Love_Never_Fails.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5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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