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판타지아 (2014)

2014.12.13 23:19

DJUNA 조회 수:5615


장건재의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가와세 나오미가 운영하는 나라국제영화제의 제작지원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영화의 무대가 나라의 소도시인 고조시이고 그 지역의 여름 불꽃 축제가 중반과 후반에 나오는 것도 제작자로 참여했던 가와세 나오미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고 합니다. 원래부터 2부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1부만 계획에 넣고 작업을 하다가 2부의 이야기는 1부 촬영 이후 즉석으로 만들었다고 하고요. 주연배우로 김새벽을 캐스팅한 것도 일본어를 하는 그 나이 또래를 찾다보니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라고 해요. 특별한 야심없이 주어진 요구와 조건을 따르면서 물 흐르듯 만들어진 영화인데, 전 이런 작품들을 좋아합니다.

1부 [첫사랑 요시코]는 흑백이고 반쯤 다큐멘터리 형식을 따릅니다. 김태훈이라는 영화감독이 조감독 겸 통역인 박미정과 고조시에서 이 도시를 무대로 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사전조사를 하는 중입니다. 그는 젊었을 때 꿈이 배우였다는 시청직원, 대도시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다가 고향에 돌아온 중년남자, 쭉 고조시 근처에서 살아왔던 할머니와 같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들 중 일부는 실제 주민들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장건재가 6개월 전에 영화를 찍기 위해 사전작업을 했을 때 만났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반영했다고 하더군요.

1부가 끝날 무렵 영화는 컬러로 바뀌고 2부인 [벚꽃 우물]이 시작됩니다. 1부에서 미정을 연기했던 김새벽과 시청직원을 연기했던 이와세 료가 이번엔 다른 캐릭터로 나옵니다. 김새벽은 일본 여행 중인 관광객 혜정으로, 이와세 료는 혜정이 고조에서 우연히 만나는 농부로 나옵니다. 그리고 둘은 고조시를 무대로 데이트를 하게 되고요.

1부와 2부는 연결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가장 상식적인 해석은 1부의 사전조사 과정을 통해 만든 영화가 2부라는 것이죠. 하지만 그건 좀 심심한 거 같습니다. 전 이 두 이야기의 연결이 불완전하고 통일되지 않은 상태가 더 매력적이거든요. 예를 들어 혜정은 1부에 나온 시청직원의 한국 관광객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캐릭터일 수도 있지만 실제 그 관광객일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농부는 당시 그 관광객이 만난 다른 사람일 수도 있지만 배우를 꿈꾸었던 시청 직원의 욕망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지요. 이런 식의 느슨한 연결점과 유사점을 따라가면 의도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나른한 귀기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설명되지 않은 상태 자체가 여분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어떻게 보건 두 이야기는 모두 매력적입니다. 감독이 여름방학 숙제처럼 받은 고조시는 지금은 떠나간 사람들의 추억이 차곡차곡 쌓인 정갈한 폐허와 같은 곳입니다. 그 안에서 인터뷰를 통해 과거를 되살리는 과정은 일종의 영화적 강령술과 같아요. 그 뒤에 이어지는 두 젊은이의 [비포 선라이즈]식의 로맨스는 그 쇠락한 조용함과 대조되어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부여받고요. 물론 김새벽과 이와세 료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의 강요되지 않은 차분하고 사실적인 매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14/12/13)

★★★☆

기타등등
2015년 여름에 개봉됩니다. 그 때 한 번 더 봤으면 해요. 계절에 따라 느낌이 다를 거 같은 영화입니다.


감독: 장건재, 배우: 김새벽, Ryo Iwase, 임형국, 다른 제목: A Midsummer's Fantasia

IMDb http://www.imdb.com/title/tt380817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3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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