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시봉 (2015)

2015.01.22 23:45

DJUNA 조회 수:15332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김현석의 [쎄시봉]은 60년대 음악감상실 쎄시봉에 대한 영화입니다. 단지 실존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그리는 대신 허구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고 주변에 실존인물을 배치했지요. 윤형주, 송창식이 트윈 폴리오로 활동하기 전에는 원래 트리오였다고 하던데, 영화는 당시 두 사람과 함께 활동했던 이익균이라는 실존인물을 지우개로 싹싹 지운 뒤에 오근태라는 허구의 인물을 넣고 그의 연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영화를 만들면서 한국판 [백비트]를 상상하고 있었던 거 같아요.

요약할 내용은 많지 않습니다. 쎄시봉에서는 윤형주와 송창식이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쎄시봉 사장은 여기에 한 명을 더 끌어들여 트리오를 만들어 데뷔를 시킬 계획을 세우죠. 자칭 쎄시봉의 전속 프로듀서인 이장희는 우연히 만난 오근태를 데려오고 쎄시봉 트리오가 만들어집니다. 얼떨결에 트리오의 멤버가 된 오근태는 또다른 허구의 인물인 배우 지망생 민자영과 사랑에 빠지고요.

영화의 아이디어는 이 허구의 로맨스를 쎄시봉의 실제 역사와 결합한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로맨스는 내용의 주를 이루기도 하지만 허구의 인물을 실제 역사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을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실제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보고 있으면 시간여행을 다룬 SF 같아요. 폴 앤더슨의 [타임 패트롤]과 같은 작품들 있지 않습니까. 물론 비유가 그렇다는 거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실 건 없고.

아쉽게도 이야기는 계획만큼 되지는 않습니다. 로맨스 자체는 평범하지만 특별히 나쁘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 영화의 매력은 실제 인물을 흉내내는 배우와 과거를 흉내내는 세트와 지어진 사연을 담고 있는 옛날 노래가 만들어내는 시대극의 유희에 있지, 그 영리한 계획 자체에 있는 건 아닙니다. 이것들을 다 걷어내고 알맹이만 본다면 이야기는 난감한 신파입니다. 거의 이현세 옛날 만화책을 보는 것 같아요. 두 사람의 로맨스보다 남자의 자기도취적 (많은 사람들은 자기희생적이라고 읽겠지만) 판타지에 치중하고 있는 영화죠.

구성이 좀 아슬아슬합니다. 2014년의 짧은 도입부를 지나면 60년대의 과거 이야기가 그려지는데 그게 영화의 3분의 2가 조금 넘습니다. 이 부분의 이야기가 끝나면 영화는 1990년대로 건너 뛰어 중년이 된 오근태와 민자영의 재회를 담습니다. 논리는 서 있습니다. 이야기를 제대로 풀려면 어느 정도 세월이 필요해요. 하지만 이렇게 어정쩡한 비율로 들어가니, 그 '영리한 계획'이 담고 있었던 이야기가 제대로 풀릴 시간을 얻지 못합니다. 90년대와 2014년 배우들은 충분히 적응할 시간도 없이 허겁지겁 이야기를 푸느라 그냥 기본만 간신히 하고 퇴장하게 되지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 이야기가 그렇게 좋지도 않고요.

타겟 관객들은 즐겁게 볼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배우와 연기의 질이 좋고 적절하게 사용된 음악 역시 호소력이 크며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힘이 상당하니까요. 하지만 전 이 영화를 보면서 점점 김현석이 걱정되기 시작하더군요. 그는 지금까지 남성 중심의 재미있는 로맨스 영화들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영화들의 힘은 그가 주인공의 심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고 그에 대해 객관적일 수 있다는 데에 있었죠. 하지만 [쎄시봉]에서 그는 습관적인 자기 도취 판타지의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그 결과, 이전 영화들과 아주 비슷하지만 정작 장점은 떨어져나간 작품이 나오게 된 거죠. (15/01/22)

★★☆

기타등등
화면비가 바뀌는 영화입니다. 60년대는 1.85:1이고 이후 시간대는 2.35:1입니다. 이 영화도 와이드스크린을 '위아래가 좁아 갑갑한' 화면 개념으로 보고 있는 거죠. 아아,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되려는지.


감독: 김현석, 배우: 정우, 한효주, 진구, 강하늘, 조복래, 김윤석, 김희애, 권해효, 김인권, 다른 제목: C'est si bon

IMDb http://www.imdb.com/title/tt112659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9966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50 마녀 (2018) [3] DJUNA 2018.06.20 13010
349 오목소녀 (2018) [1] DJUNA 2018.05.16 6859
348 당신의 부탁 (2017) DJUNA 2018.04.19 8391
347 나를 기억해 (2018) DJUNA 2018.04.13 10723
346 운동회 (2016) DJUNA 2018.03.27 4748
345 기억을 만나다 (2018) DJUNA 2018.03.22 4591
344 소공녀 (2017) DJUNA 2018.03.13 9723
343 사라진 밤 (2018) DJUNA 2018.03.07 5800
342 리틀 포레스트 (2018) [2] DJUNA 2018.02.24 10590
341 흥부 (2018) DJUNA 2018.02.10 6481
340 두 개의 빛: 릴루미노 (2017) DJUNA 2017.12.21 4338
339 월하 (2017) DJUNA 2017.12.20 5367
338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2016) DJUNA 2017.12.19 4529
337 1987 (2017) [3] DJUNA 2017.12.14 11910
336 수요기도회 (2016) [2] DJUNA 2017.12.10 5541
335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2016) DJUNA 2017.12.09 5671
334 황제 (2017) DJUNA 2017.12.07 422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