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 량첸살인기 (2015)

2015.10.23 19:31

DJUNA 조회 수:11364


케이블 뉴스 채널의 기자인 허무혁의 인생은 바닥을 찍었습니다. 아내와는 이혼을 앞두고 있고 직장에서도 쫓겨나기 직전이죠. 기자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이상이나 사명 같은 게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런 거 없습니다.

그런 그에게 엄청난 제보가 들어옵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연쇄살인마가 이웃일지도 모른다는 거죠. 처음에 반신반의했던 그는 제보자가 알려준 반지하방으로 들어가는데, 그 안은 피투성이인데다가 벽엔 살인마의 고백처럼 보이는 섬뜩한 문장들이 적혀 있습니다. 그는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그 노트를 하나 뜯어가지고 나와 기사를 씁니다. 뉴스는 엄청난 히트를 하고 그는 방송국의 스타로 떠오르는데... 아, 어쩌나요. 그 방 주인은 연쇄살인범을 연기하는 배우였고 노트는 그가 출연하는 연극의 원작인 중국 소설의 인용구였던 것입니다.

제가 정말 무서워하는 설정인데, 사실 이런 설정의 이야기가 제가 걱정하는 최악으로 빠지는 일은 없습니다. 노덕의 [특종: 량첸살인기]도 마찬가지. 허무혁은 자신의 거짓말에서 빠져나려고 발버둥치지만 거짓말은 그 동안 오히려 현실을 잡아먹기 시작합니다. 뻔한 거짓말에서 나온 노골적인 실수들은 그 거짓말의 흐름 속에 휩쓸려서 오히려 유력한 증거가 되거나 묻혀버리고요. 심지어 그 흐름은 중반 이후 살인범까지 장악해버립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매스컴 풍자극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조금 더 큰 그릇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진짜로 이야기하는 이야기의 힘이죠. 매스컴이 센세이셔널리즘에 말려들고 진실을 무시하는 건 기본적으로 이야기의 힘 때문입니다. 우린 모두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치에 맞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원하죠. 진실과 좋은 거짓말이 있을 때 후자에 기우는 건 흔한 일입니다. 심지어 진실을 알고 있을 때도요.

영화는 이 모든 것을 일종의 표절처럼 다룹니다. 중반엔 실제로 예술가의 표절 이야기가 큰 비중으로 나오는데 우연일 리가 없겠죠. 단지 이 경우는 현실의 세계가 허구의 예술작품을 표절하는 것입니다. 허무혁의 경우는 의도적으로 그런 건 아니었지만 사실 상당수의 표절이 이와 같은 무심함의 결과죠. 당연히 그는 영화 후반에 대가를 치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거짓이 모두 교정되어 밝고 진실된 세계가 되는 그런 결말은 없습니다.

그래도 영화 후반의 뒤틀기는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리 이야기의 힘이 강해도 구체적인 물적증거와 과학수사라는 것이 있고, 허무혁도 이 난장판을 조금 더 그럴싸하게 정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니까요. 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도 이 문제점을 알고 있었겠지만 당위성보다 이야기의 재미와 주제를 선택한 거겠죠. 이 선택 자체가 영화의 주제를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는 건 말할 필요가 없고. (15/10/23)

★★★

기타등등
노덕의 전작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라 재미있었습니다. 의외로 장르폭이 넓은 감독이네요.


감독: 노덕, 배우: 조정석, 이하나, 이미숙, 김의성, 배성우, 김대명, 태인호, 윤다경, 다른 제목: The Exclusive : Beat the Devil's Tattoo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Exclusive_2p__The_Ryangchen_Murders.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36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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