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 (2010)

2010.07.07 18:45

DJUNA 조회 수:32701


원작을 먼저 읽을 것인가, 아니면 각색물인 영화를 먼저 볼 것인가. 몇 개월 전에도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한 적 있죠.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때였는데, 시사회까지 원작을 구할 수 없어서 결국 영화를 먼저 보고 그 이후 원작을 읽어야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건 거의 최상의 선택이었습니다. 원작을 몰랐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전혀 없이 독립적인 한 편의 작품으로 볼 수 있었고, 나중에 원작 역시 영화에 얽매이지 않고 편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아마 제가 주변 사람들보다 영화에 관대했던 것도 그 때문일지 몰라요. 여전히 원작이 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독립적인 작품으로 보면 영화도 건질 게 꽤 많습니다. 


같은 논리가 [이끼]에도 적용이 될까요? 직접비교는 어렵습니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때와는 달리 이번엔 원작을 시사회 직전에 읽고 그 다음에 영화를 보았거든요. 아마 이 순서가 제 판단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하지만 그걸 고려한다고 해도 전 [이끼]와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다르다고 말할 겁니다. 둘의 각색 태도는 전혀 다르니까요. 완전히 원작을 해체한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과는 달리 영화 [이끼]는 여전히 원작 [이끼]에 기생하고 있어요. 영화판 [이끼]를 먼저 읽는 건 원작을 읽는 재미를 빼앗습니다. 그렇다고 원작을 먼저 읽었을 때 영화가 더 재미있어지는 것도 아니란 말이죠. 이 경우 영화와 만화의 재미를 최대한으로 뽑는 방법은 단 한 가지입니다. 둘 중 하나만 보세요. 전 원작만화만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시사회 이후 리뷰들을 읽어보면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꽤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전 여전히 강우석의 [이끼]가 실패한 각색이라 생각하고 있고, 지금부터 왜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 생각이 어떤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 여러분에게 들려드릴 겁니다. 


우선 장르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윤태호의 [이끼]는 무슨 장르를 의도하고 있나요? 하드 보일드 추리물이라는 게 가장 쉬운 정답입니다. 하지만 만화라는 시각적 장르와 이 작품이 의식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영화적 성격을 고려해보면 '필름 느와르'라는 답이 혀 끝을 맴돕니다. 많은 하드보일드 추리물들이 그렇듯, 이 만화는 적어도 필름 느와르로 각색되어야 할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거의 모든 개성이 그 장르를 지향하고 있지요. 끝을 알 수 없는 미로와 같은 미스터리, 쉽게 이길 수 없는 거대한 사회적 악과 희망없는 싸움을 벌이는 외로운 주인공, 그리고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더러운 기분'. 그것들이 가장 잘 살아있을 때 [이끼]는 올바른 각색물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강우석이 저지른 첫 번째 실수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습관화된 이야기꾼답게, [이끼]에서 '미스터리 추리물'의 플롯을 건져 영화의 바탕을 삼았습니다. 이장과 마을 사람들과 주인공의 아버지에게는 모두 사정이 있고 그 사정을 들려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 생각한 것이죠.  


미안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생각입니다. [이끼]에서 스토리와 미스터리의 진상은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살인범과 진상이 지금과 전혀 다르면서도 여전히 [이끼]의 개성을 고스란히 유지하는 작품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챈들러의 [거대한 잠]의 각색 에피소드를 기억하시나요? 원작자 레이몬드 챈들러, 각색자 윌리엄 포크너, 리 브라켓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특정 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군지 몰라서 허우적거렸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훌륭한 영화를 만들었지요. '누가 누구를 죽였냐'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필름 느와르에서 중요한 것은 진상과 스토리가 아니라 그것들의 징후입니다. [이끼]의 독자들이 스토리보다 더 직접적으로 체험했던 것도 그 징후였습니다. 그 징후만 살린다면 스토리가 바뀌어도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예 없어도 되었던 거죠.


하지만 강우석은 일단 스토리로 갔습니다. 그의 각색 목표는 원작의 구조를 조금 더 '치밀하고' '이해하기 쉽게' 고치는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기도원 장면을 프롤로그에 두고 중간중간에 진상을 풀어 원작만화의 참고서 버전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는 결말을 조금 바꾸었는데, 녹취록을 읽어보니 그 창의성에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어느 것도 최종결과물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기도원 장면을 도입부로 삼은 건 단순히 정보 전달을 손쉽게 하는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주인공이 던져진 폐쇄된 마을 내부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던 미로의 구조를 깨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구조가 깨지면 스토리의 인상은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원작의 매력 자체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를 통해 얻는 것은 기껏해야 진상에 보다 빨리 접근하는 것인데, 이야기 뒤에 숨은 진상은 [이끼] 원작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닙니다. 애는 많이 썼는데, 얻은 건 빈약하기 짝이 없지요.


캐릭터의 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의 접근법은 철저하게 실용적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원작에서 주인공 류해국과 박검사는 처음부터 알던 사이지만, 박검사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건 중후반을 넘어서입니다. 강우석은 추리물 구조에 이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류해국과 박검사를 거의 도입부에서부터 묶어버렸죠. 이건 '실용적'인 아이디어입니다. 하지만 그 '실용'을 통해서 얻은 건 뭔가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냥 박검사가 조금 더 많이 나왔고 정의실현이 조금 표면적이 되었을 뿐이죠. 그리고 이렇게 되면 두 사람의 애증 섞인 갈등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그냥 사라져버립니다. 그리고 [이끼]의 이야기에서 그 긴장감이 없으면 굳이 박검사가 나와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경우는 더욱 치명적입니다. 강우석은 2시간 30분이 넘는 긴 러닝타임을 관객들이 넘기기 위해서는 '강우석식 유머'가 필수적이라고 봤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모두 어릿광대로 만들어버렸죠. 유머감각도 있는 악당들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코믹 막간극용 소도구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전히 이들은 원작의 악당 노릇을 합니다. 이러면 캐릭터와 기능이 어긋나버릴 수밖에 없죠. 원작에서 그렇게 컬러풀하고 인상적이었던 인물들은 이제 강우석식 희극적인 소악당으로 변형되었는데, 그들은 당연히 원작의 캐릭터들보다 재미가 없습니다. 


물론 강우석의 전제는 그냥 '틀렸습니다.' 우선 [이끼]는 꼭 2시간 반이 넘는 영화가 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영화가 그렇게 길어진 건 각색자의 무능 때문이었죠. 만화책이라 권 수가 많을 뿐 [이끼]가 하는 이야기는 위에서 언급한 [거대한 잠]보다 훨씬 짧습니다. 둘째로, 두 시간 반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닙니다. 좋은 영화라면 휴식시간 하나도 없이 끊임없이 긴장감을 유지해도 관객들은 그냥 봅니다. [다크 나이트]가 바로 그런 영화였죠. 관객들이 그 시간을 감당 못할 거라고 그냥 믿어버리는 이야기꾼은 관객들을 과소평가하고 자신의 노력을 최소화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건 책임회피에 불과합니다. 셋째, '강우석식 유머'는 영화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유머가 아닙니다. [다크 나이트]는 진지하기 짝이 없는 영화였지만 유머가 없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윤태호의 [이끼]도 유머 없는 만화가 아닙니다. 단지 강우석이 그걸 읽지 못했을 뿐입니다. 


강우석의 [이끼]는 다운그레이드된 각색물입니다. 강우석은 [이끼]를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이해폭은 이야기꾼 강우석의 시야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원작을 넘어서고 원작과 다른 영화를 만들려 했지만, 그 결과는 그가 몇십 년 동안 익숙해져 있던 '강우석표 영화'의 틀 안에 원작을 맞추어 또 하나의 기성품을 만들어낸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 결과 원작이 가지고 있던 가장 좋은 부분들은 다 떨어져 나갔고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중간 덩어리밖에 남지 않았죠. 아마 여러분은 강우석의 개성이 반영된 다른 종류의 영화가 나온 것 자체를 장점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왜 이 원작이 그런 취급을 받아야 합니까? 


기술적인 면에서도 영화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닙니다. 일단 대사를 볼까요? 윤태호는 구어체의 대사에 능숙한 작가로, 만화를 읽다보면 거의 화자의 목소리가 자동재생될 정도입니다. 사투리를 쓰는 시골 사람들만 그런 게 아니라 시골에 좌천된 검사와 같은 표준어 쓰는 지식인 캐릭터들도 그렇죠. 하지만 강우석의 각본에서 이 대사들은 그냥 기어다닙니다. 이 영화에서 좋은 대사들은 몽땅 윤태호가 썼고 나쁜 건 모두 각색자들이 썼어요. 연기지도도 나쁩니다. 캐스팅의 문제점이야 처음부터 어쩔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이들이 좋은 배우들이라고 해도 처음부터 잘못된 계산을 이겨낼 수는 없죠. 하지만 그걸 고려해도 배우들은 자기 실력을 온전히 살리지 못합니다. 그나마 처음부터 원작과 이미지가 맞았던 몇 안 되는 배우인 박해일이 자신의 캐릭터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걸 보면 팬들은 무척 슬플 것입니다. 전에도 그가 이렇게 대사를 씹은 적이 있었던가요.


결정적인 문제는 영화가 지루하다는 것입니다. 이건 영화가 길어서가 아닙니다. 그 긴 시간을 제대로 채우지 못해서 그런 거죠. 전 원작만화를 미로와 비교했습니다. 강우석의 영화는 벽이 무너져 버린 미로와 같습니다. 처음부터 사방으로 뚫려 더 이상 주인공과 관객들을 가두지도 못하고 지리를 고스란히 노출시키는 모양 뿐인 미로인 것이죠. 여기서 서스펜스를 읽는 건 무의미한 일입니다.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냥 보이는 걸요. 


이 모든 건 계산착오와 오만의 결과입니다. 특히 후자의 죄가 큽니다. 왜 강우석은 원작의 매력을 그대로 스크린으로 살려 옮기는 것이 자신의 자존심을 망치는 짓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그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이고, 심지어 우리가 가장 위대한 영화예술가들이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올바른 원작을 만났을 때는 자신의 에고를 접고 그 길을 충실히 따랐다는 것을 몰랐던 걸까요? 이런 원작을 다룰 때 '자기식 각색'이라는 게 편리하기만 한 변명인지 몰랐던 걸까요? [이끼]는 고민과 도전의 산물이 아닙니다. 이 영화는 오로지 매너리즘과 편한 지름길로만 만들어졌습니다. (10/07/07)



기타등등

제목 [이끼]의 의미를 순진무구하게 풀어 쓰는 건 정말 쓸모 없는 짓이었습니다. 그게 참고서질이 아니면 뭐란 말입니까. 왜 우리가 제목의 정답을 들어야 하죠?


감독: 강우석, 출연: 정재영, 박해일, 유준상, 유선, 허준호, 유해진, 김상호, 김준배, 다른 제목: Moss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Moss.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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