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들 (2012)

2012.07.11 01:42

DJUNA 조회 수:27453


최동훈의 [도둑들]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한국의 [오션스 일레븐]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10명이나 되는 대규모 인원을 굴리는 케이퍼 영화이니 언뜻 보면 말이 됩니다. 하지만 케이퍼 영화 장르 안에서 [오션스 일레븐]은 [도둑들]에 가장 가까운 영화는 아닙니다.

시작은 간단명료합니다. 마카오박이라는 도둑이 과거의 파트너였던 뽀빠이, 예니콜, 씹던껌, 잠파노를 홍콩으로 불러들입니다. 여기엔 막 출옥한 금고털이 팹시가 가세하고요. 이들은 홍콩에서 4인조 중국 멤버인 줄리, 첸, 앤드류, 조니와 합세하는데... 음, 열 명 맞죠? 하여간 이 사람들의 목표는 마카오 카지노의 금고 안에 숨겨져있는 '태양의 눈물'이라는 다이아몬드입니다.

여기까지는 [오션스 일레븐]스럽다고 할 수도 있죠.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야기는 배배 꼬입니다. 뽀빠이와 팹시는 마카오박에게 안 좋은 기억이 있었고, 중국 측 멤버들에게도 각각의 사연이 있습니다. 여분의 동기와 그 동기에 바탕을 둔 음모 때문에, 간단히 물건만 털면 끝날 것 같았던 이야기는 엉뚱한 파국을 맞고, 그 뒤로 영화는 무대를 바꾸어 보다 진지한 드라마로 옮겨갑니다.

[도둑들]의 분위기는 [오션스 일레븐]보다는 8,90년대 홍콩 영화들에 더 가깝습니다. 영화 전체가 감독이 소년 시절 비디오나 재개봉관에서 보았을 홍콩 영화에 대한 향수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홍콩과 마카오가 무대이기도 하지만. 당시 영화들의 정서나 캐릭터 같은 걸 많이 빌려 오고 있지요. 여기에 임달화 같은 당시의 홍콩 배우들이 시치미 떼고 등장하니까 종종 진짜 홍콩 영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제 취향에는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느껴지는 남녀상열지사 요소들도 이 안에서는 말이 되는 거 같아요.

등장인물들이 열 명이나 되니 정신이 없을 것 같지만, 최동훈은 예상 외로 인물 정리를 잘 하고 있습니다. 이들 모두가 같은 비중일 수는 없습니다. 몇 명은 다른 몇 명보다 더 평면적이고 역할도 작습니다. 하지만 그런 인물들도 자기 역할을 잘 하고 있고, 모두가 전체 스토리 안에서 잘 굴러가고 있지요.

영화는 사실 좀 산만하고 긴 편입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20분 정도 줄인다면 더 좋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특히 결말은, 하나가 끝나면 다른 하나가 계속 튀어나오는 것처럼 보여 조금 당황스럽고요. 그런데 그걸 다 인정한다고 해도, 영화는 신기하게 안 지루합니다. 특별한 클라이맥스는 없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리듬감 속에서 재미있는 것들이 계속 이어지는 걸 구경하는 기분. 이러니 전 조금 관대해져서 이 산만함도 감독의 개성이려니 하고 받아들이게 되지요. 아니, 사실 개성 맞잖습니까.

영화는 중반부의 하이스트 액션과 후반의 아파트 총격전을 양대 액션 포인트로 잡고 있습니다. 전자가 전통적이고 우아한 금고털이 액션이라면, 후자는 아파트 건물이라는 3차원 공간을 자유자재로 누비는 난폭한 총격전입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모두 선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진짜로 중요한 건 액션 자체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각각의 캐릭터들이 그 안에 어떻게 녹아들어가느냐인데, 이는 비교적 성공적입니다.

영화에서 가장 비중이 큰 배우는 마카오박을 연기한 김윤석입니다. 이야기의 중심이고 액션도 큰 걸 얻었습니다. 언제나처럼 잘하고요. 하지만 전 최동훈이 이 캐릭터의 비중을 조금 줄였다면 캐릭터나 배우가 더 살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장 이익을 많이 챙긴 배우는 줄타기 전문가 예니콜을 연기한 전지현입니다. 전지현은 이 영화에서 줄타기 액션도 하고, 코미디도 하고, 섹스 어필도 마음껏 과시하며 신나는 두 시간을 보내는데, 왜 지금에야 이런 역을 얻었는지 이상할 지경입니다. 중국쪽 배우들 중에는 임달화의 굵고 짧은 연기가 눈에 뜨입니다. 보고 있으면 향수가 팍팍 돋을 지경이죠. 나머지 배우들도 빠지는 구석이 없습니다. 이들 중 몇 명이 평면적이고 비중이 약하다고 지적하는 것 같은 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전 오히려 이정재 같은 스타가 에고를 접고 그 평면적이고 작고 폼 안 나는 캐릭터를 신나게 연기하고 있는 게 좋아 보입니다. (12/07/11) 

★★★

기타등등
예수정이나 최덕문 같은 한국인 배우들이 마카오 쪽 사람들로 등장하는데, 이유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그 사람들이 꼭 중국계여야 할 이유도 없긴 합니다만.

감독: 최동훈, 출연: 김윤석, 김혜수, 이정재, 전지현, 김해숙, 오달수, 김수현, 신하균, Simon Yam, Angelica Lee, Derek Tsang,  다른 제목: The Thieves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The_Thieves.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8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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