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블비 Bumblebee (2018)

2018.12.20 22:28

DJUNA 조회 수:9964


트래비스 나이트의 [범블비]는 지난 10년 동안 마이클 베이가 가지고 놀았던 프랜차이즈의 실제 가치를 입증해주는 영화입니다. 걸작 같은 건 아닙니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계 변신 로봇들의 난투극을 갖고 그런 영화를 만드는 게 가능할까요?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굳이 그런 공을 들일 필요는 없겠죠. 하지만 [범블비]는 걸작은 아니더라도 정말 재미있는 영화이며, 지난 10년 동안 어리둥절한 관객들에게 던져졌던 베이 판 [트랜스포머] 영화들을 다 합친 것보다 낫습니다.

프리퀄입니다. 1편 설정이 가물가물하지만 리부트이기도 할 거예요. 시대배경은 1987년. 외계 로봇 전쟁이 그려지는 오프닝이 지나가면 무대는 지구가 되고 지구인 청소년과 오토봇의 우정 이야기가 다시 시작됩니다. 단지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여자예요. 찰리 왓슨이라는 고등학생이고 몇 년 전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엄마는 재혼했고 가족은 안정을 찾았지만 찰리는 여전히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아버지의 차를 수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버려진 노란 폭스바겐 비틀을 발견해서 집으로 가져오는데, 이게 바로 우리의 주인공 범블비였던 거죠. 찰리가 어떻게든 집안 사람들과 정부로부터 범블비를 숨기려고 하는 동안 디셉티콘 일당들이 지구로 내려옵니다.

베이의 다른 [트랜스포머] 영화들에 비하면 조촐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느 정도 비중있게 등장하는 트랜스포머들은 겨우 셋. 주인공 범블비와 디셉티콘 일당인 셰터와 드롭킥 정도죠. 하지만 이건 영화의 장점입니다. 로봇 수가 줄어들자 캐릭터가 숨쉴 여유를 얻었거든요. 그러니까 이들은 이제 설정집 정보 묶음 이상의 존재입니다. 분명한 개성이 있고 그런 개성을 대사와 행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캐릭터들이죠.

그건 인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트랜스포머] 1편의 주인공 샘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캐릭터라기보다는 미국 남자 청소년의 아바타라고 할 수 있는 존재였고 범블비는 그들의 위한 판타지였죠. 하지만 찰리는 평범하지만 자기만의 고민을 가진 진짜 아이이고 그건 찰리의 가족이나 그 아이를 짝사랑하는 옆집 소년과 같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변신 로봇에 대한 영화지만, 그들은 로봇과 상관없이 스스로 존재해요. [범블비]는 범블비만큼이나 찰리의 이야기이며, 찰리의 성장서사에 맞추어 이야기가 재단되어 있습니다. 찰리 역의 헤일리 스타인필드가 이 캐릭터를 절절하게 연기하고 있기 때문에 캐릭터의 무게감이 더 크죠.

이런 두 무리가 얽히니까 아주 자연스러운 드라마가 만들어집니다. 여자아이의 성장기와 외계에서 온 로봇이 나오는 액션이 엮인 이 이야기는 [E.T.]를 포함한 80년대 가족 모험 영화의 틀을 따르기 때문에 아주 새롭지는 않은데, 영화는 오히려 그 친숙함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설정의 어처구니 없음이 대충 감추어지고 캐릭터들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거죠. 베이 영화에서 자주 느껴지는, 액션을 위해 드라마를 덕지덕지 이어 붙인 느낌도 없는데, 이건 각본가가 크리스티나 호드슨 한 명이고 호드슨은 액션 장면을 넣기 위해 그렇게까지 필사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드라마가 필요하면 잠시 액션을 미루어두고 드라마에 집중하는 그런 각본이에요. CG가 등장하는 장면들도 액션 만큼이나 캐릭터에 공을 들입니다. 특히 범블비요. 범블비 묘사에 들어간 돈 대부분은 캐릭터 묘사와 찰리와 범블비의 관계를 그리는 데에 들어갔어요.

그렇다고 액션이 떨어지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마이클 베이의 영화는 엄청 요란하고 거창하기는 한데 이상하게 타격감이 떨어졌지요. 그의 영화 속에 나오는 로봇들은 쇠사슬처럼 축 늘어지고 복잡해서 로봇과 건물과 폭탄에 얻어맞아도 충격의 느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 속 로봇들은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물리적 존재감을 유지합니다. 여전히 실제 물리법칙과 어느 정도 타협을 보긴 합니다만 베이의 영화보다 훨씬 현실감이 있죠. 한마디로 싸움보는 재미가 더 좋습니다.

생각해보면 이전 [트랜스포머]는 마이클 베이가 얼마나 고집스러운 오퇴르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만큼이나 오퇴르의 폐해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했고요. [범블비]는 이전 [트랜스포머] 영화들만큼 분명한 개성이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모르겠어요. 나이트나 호드슨이 영화를 몇 편 더 만들면 그들의 개성이 보일지. 하지만 지금 이 영화는 상식적인 사람들이 에고의 만족과 로봇에 대한 포르노적 판타지 대신 스토리와 캐릭터에 집중한다면 망한 오퇴르 영화보다 훨씬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증거처럼 보입니다. (18/12/20)

★★★

기타등등
안젤라 바셋이 목소리를 연기한 셰터는 [트랜스포머] 시리즈 최초로 비중있는 '여자 로봇'입니다. 이 세계에서 '여자'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범블비도 마찬가지죠.


감독: Travis Knight, 배우: Hailee Steinfeld, Dylan O'Brien, John Cena, Angela Bassett, Justin Theroux, Peter Cullen,

IMDb https://www.imdb.com/title/tt4701182/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6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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