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2013)

2013.05.17 11:14

DJUNA 조회 수:16889


바즈 루어만의 [위대한 개츠비]의 리뷰를 쓰는 게 심심하기 짝이 없는 이유. 전 루어만이 이 소설을 영화화한다는 뉴스를 듣는 순간, 이 양반이 무슨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건지 단번에 알았단 말입니다. 제가 예지능력이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닙니다. 루어만이 그만큼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남자였기 때문이죠. 

나온 영화는 정말로 예상했던 그대로였습니다. 스타일은 요란하고 시끄러웠습니다. 원래부터 그리 복잡하다고 할 수 없었던 스토리는 중학생 감상문 수준으로 압축, 단순화되었고요. 사방 천지에 시대착오적인 팝송들이 날아다니는 건 당연한 일. 게다가 3D. 예상하지 못했던 건, 그가 원작에는 없는 액자 구조(영화는 정신과 상담을 받는 닉 캐러웨이가 그 과정 중 개츠비에 대한 책을 쓰는 식으로 진행됩니다)를 이상할 정도로 부풀렸다는 것인데, 이 역시 [물랑 루즈] 때 이미 본 것이라 곧 친근해졌습니다. 

루어만은 이 시대착오적이고 현란한 서커스를 통해야만 관객들이 1920년대의 정신나간 화려함을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모양입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한 건 이해가 갑니다. 원래 그런 식으로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가 그렇게 믿는다고 관객들까지 그래야 할 이유는 없죠. 영화는 정반대 방향으로 갑니다. 3D와 특수효과는 오히려 이 세계가 가짜라는 인상만 줄뿐입니다. '동시대'의 음악을 넣는 건 루어만이 의도했던 '타임머신' 효과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요. 

무엇보다 그는 중요한 것을 잊고 있습니다. 피츠제럴드의 이 이야기에서 그 화려함은 말 그대로 껍질이라는 것. 주인공 개츠비는 저런 소란함에서 늘 조금씩 떨어져 서 있는 남자라는 것. 아무리 호사스러운 파티들이 자주 묘사되어도 이 소설은 결국 바보스러운 호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대비효과를 내는 배경으로 물러나고, 스포트라이트는 결코 똑똑하다고도, 현명하다고도 할 수 없는 한 줌의 사람들에게 집중되어야 하죠.   

루어만도 그렇게 하기는 합니다. 그도 원작의 이야기를 파괴할 생각까지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꼼지락거리면서 억지로 그렇게 하지요. 보세요. 루어만 특유의 화려한 비주얼은 이야기 진행에 어떤 도움을 주지 않은 채 붕 떠있기만 합니다. 개츠비, 데이지, 캐러웨이, 부캐넌이 오붓하게 모여 진짜 이야기를 끌어가려고 하면, 그는 마치 지나치게 부지런한 급사처럼 이들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며 "뭐, 제가 할 일이 없나요? 여기 어딘가에 제 장기를 넣으면 좋지 않나요?"라고 말을 걸지요. 그러는 동안 묻혀도 좋은 것들은 불필요하게 과장되고, 중요한 것들은 집중력을 잃습니다. 

여기서 가장 손해를 보는 것은 닉 캐러웨이의 내레이션입니다. 그의 내레이션 중 몇몇은 영문학상 가장 유명한 명문 중 하나죠. 하지만 그건 화자가 무심하게 뒤로 물러나 있을 때 최대한의 효과를 냅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 문장들을 한 글자씩 컴퓨터 그래픽으로 화면에 띄우면서 제발 읽어달라고 강요해요. 당연히 흥이 떨어집니다. 피아니시모로 연주해야 할 곡을 포르테로 때려박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영화의 이야기가 일그러지는 건 루어만의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루어만이 원작을 이해하는 방식이 괴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위대한 개츠비]를 그랜드 로맨스로 봅니다. 하긴 로맨스도 있습니다. 로맨스가 중심이죠. 하지만 루어만처럼 이를 위대한 사랑 이야기로 본다면 소설의 주제가 망가져 버립니다. 그냥 평범한 로맨스만 남을 뿐이죠.

예상외로 (또는 예상대로) 캐스팅은 괜찮습니다. 아마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겠죠. 개츠비라는 호구를 연기하기엔 디카프리오가 지나치게 스타가 아니냐고 생각하실 분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배우 디카프리오를 보세요. 그는 자연스러운 연기가 장점인 배우는 아닙니다. 늘 조금씩 경직되어 있고 지나치게 열심히 하는 티가 나지요. 그런 모습이 이 영화에서는 자연스럽게 캐릭터로 이어집니다. 전 여전히 더 평범하고 덜 스타인 배우가 맞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디카프리오의 캐스팅은 여러 면에서 적절해요. 캐리 멀리건은 제가 지금까지 본 세 명의 데이지 중 가장 좋습니다. 캐릭터가 초점을 잃은 건 배우 탓이 아니죠. 조엘 에저튼, 토비 맥과이어, 아일라 피셔 그리고 엘리자베스 데비키도 다른 영화였다면 훨씬 빛이 났을 배우들입니다.

루어만이 할 수 있는 재주는 많지 않습니다. 그것들이 올바른 소재와 만난다면 [물랑 루즈]처럼 신나는 영화가 나오죠. 하지만 어떻게 봐도 [위대한 개츠비]는 그런 소재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원작의 새로운 해석이 좋다고 해도, 이런 이야기에서 사실적이고 정확한 시대묘사를 떼어내면 남은 건 이야기와 캐릭터의 잔해들 뿐입니다. 루어만의 재주만으로는 이들을 결코 하나로 묶을 수가 없어요. (13/05/17)

★★

기타등등
이 영화에서 울프심으로 나오는 배우는 아미타브 밧찬. 깜짝 놀랐어요.

감독: Baz Luhrmann, 배우: Leonardo DiCaprio, Carey Mulligan, Joel Edgerton, Tobey Maguire, Isla Fisher, Elizabeth Debicki

IMDb http://www.imdb.com/title/tt134309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8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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