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클 분미 Loong Boonmee raleuk chat (2010)

2010.09.14 14:34

DJUNA 조회 수:16089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엉클 분미]는 신장질환을 앓고 죽어가는 주인공 분미가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해 태국 북동부에 돌아오면서 시작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집에 죽은 아내의 귀신과 오랫동안 실종되었다가 원숭이 인간이 된 아들이 그를 찾아오지요.

 

전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라오스와 인접한 이 지역의 피투성이 과거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에도 그에 대한 언급이 조금씩 나옵니다. 그 때문에 영화의 감상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정보들은 태국 관객들은 자연스러운 상식이지만 외국 관객들에겐 해답이 군데군데 숨겨진 수수께끼처럼 보이니까요.

 

영화의 주인공 분미는 실존인물이고, 자신이 전생을 본 경험을 바탕으로 책까지 쓴 사람인 모양입니다. 하지만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은 실존인물의 전기를 쓰는 대신 그의 이름과 기본 설정을 빌려서 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예를 들어 분미가 신장병을 앓고 있는 건 감독의 아버지가 같은 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며 영화에 나오는 투석기도 아버지 것이라고 하더군요.

 

이 영화에서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스토리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우선 순위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일반적인 극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토리이고, 캐릭터, 배경, 주제가 그 뒤에 따라 붙습니다. 하지만 [엉클 분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 보다 정확히 말하면 시공간 자체예요.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은 [엉클 분미]를 통해 하나의 우주를 만듭니다. 그리고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은 모두 그 시공간의 일부인 거죠.

 

그 때문에 관객들은 종종 4D적인 경험을 체험합니다. 분미의 아내가 나타나는 장면 같은 것을 보죠. 일반적인 호러 영화는 귀신이 나타날 때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귀신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천천히 불투명해지죠. 방심했다가는 언제 등장했는지 눈치채지 못할 지경입니다. 귀신은 정제된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라 태국 북동부 정글의 한 부분이고 관객들 역시 그 귀신을 그 거대한 시공간의 일부로 체험하게 됩니다.

 

중간에 분미의 이야기를 끊고 못생긴 공주와 메기 이야기를 집어넣는 스토리텔링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토리 위주의 이야기에서 이런 단절은 어색할 것입니다. 하지만 [엉클 분미]의 세계에서는 자연스럽습니다. 그냥 관객들은 엉클 분미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시공간을 가볍게 떠났다가 공주와 메기의 이야기가 벌어지는 시공간에 들어간 겁니다. 이들 모두는 거대한 타피스트리의 일부이고, 관객들은 꼭 그들을 순서나 논리를 따라 감상할 필요는 없습니다. 심지어 가끔 졸면서 봐도 될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제목에도 떡 박아넣은 분미의 전생이란 무엇일까요. 이 역시 구체적인 의미가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메기나 공주 중 하나를 꼭 집어서 분미의 과거로 볼 필요는 없단 말이죠. 전생과 내세를 하나로 이어지는 선으로 볼 필요도 없고 여기에 꼭 초자연현상을 덧붙일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도서관 세계에서 독자는 1인칭으로 기억되는 모든 인생들을 전생으로 품습니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읽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 아이는 그들의 전생인 거죠. 분미의 정글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정글은 도서관처럼 그 안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들을 담은 세계이고 전생이란 그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입니다.

 

어떻게 보면, [엉클 분미]는 영화라기보다는 설치예술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그 자체로는 한없이 영화적이지만 정작 보는 동안에는 영화 이상의 무언가를 품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지금 미디어 시티 서울에서는 [엉클 분미]도 일부인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프로젝트 [프리미티브]를 전시하고 있는데, 그 작품들을 마저 봐야 전체적인 그림이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의심하는 중입니다.  (10/09/14)



기타등등

원숭이 인간의 붉은 눈은 16밀리로 찍은 옛 텔레비전 시리즈의 인용이라더군요. 당시엔 괴물임을 밝히기 위해 그런 식으로 빨간 전등을 눈에 박아넣는 장르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역시 태국 관객들과 외국인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겠죠.


감독: Apichatpong Weerasethakul, 출연: Sakda Kaewbuadee, Jenjira Pongpas, Thanapat Saisaymar, 다른 제목: 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 

 

IMDb http://www.imdb.com/title/tt1588895/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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