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자들 (2013)

2013.06.20 02:37

DJUNA 조회 수:23475


두기봉의 각본가인 유내해는 2007년에 [천공의 눈]이라는 스릴러로 감독 데뷔를 했습니다. 밀키웨이에서 만들어지는 많은 영화들이 그렇듯, 이 영화도 두 프로페셔널의 대결을 그리고 있어요. 양가휘 캐릭터가 이끄는 범죄자들은 보석털이 전문강도이고, 임달화 캐릭터가 이끄는 형사들은 범죄자들을 미행하고 감시하는 전문가들인데, 이들은 영화 내내 최선을 다해 쫓고 쫓깁니다. 두기봉이 직접 감독한 영화들의 기술적 우아함은 부족하지만 밀키웨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매력은 많이 갖추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리메이크 한 영화가 조의석, 김병서가 감독한 [감시자들]입니다. 기본 이야기와 인물 설정은 같아요. 설경구가 연기하는 황반장이 이끄는 감시조에 한효주가 연기하는 하윤주라는 신참이 들어오는데, 이들은 영화 내내 단 한 번도 이름이 나오지는 않지만 크레딧에는 제임스라고 나오는 정우성 캐릭터가 이끄는 강도들을 추적합니다.

[감시자들]은 [천공의 눈]보다 훨씬 큰 영화입니다. 원작을 할리우드화한 버전을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러닝타임이 더 길어졌고 사건은 더 커졌습니다. 원작에서는 악당들은 구질구질한 생활범죄자들이었지만, 제임스가 이끄는 무리들은 보이지 않는 거물들을 위해 나라를 흔들 수도 있는 엄청난 물건들을 훔칩니다. 마찬가지로 이들을 상대하는 경찰들도 급이 높아졌습니다. 더 비싼 장비들을 사용하는 더 스페셜한 인력들이죠. 무대는 대도시의 보다 호사스러운 영역으로 옮겨갔고 액션도 커졌어요,

밀키웨이 영화팬들에게 이 설명은 그렇게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을 겁니다. 그건 리메이크 각색 과정 중 그들에게 익숙한 밀키웨이 영화 특유의 매력을 날려버렸다는 뜻이죠. 원작의 많은 부분들을 가져오고 있긴 하지만, [감시자들]은 현대 대도시 뒷골목을 배경으로 한 애잔한 무협지가 아닙니다. 장면에 따라 더 말랑말랑할 수도 있고 더 터프할 수도 있지만, 원작의 감수성을 충실하게 복사하지는 않아요.

대신 영화는 다른 것들을 넣습니다. 과묵하기 짝이 없는 원작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훨씬 말이 많습니다. 그 때문에 영화적 순수성은 깨졌을지 몰라도 캐릭터들이 훨씬 다채롭고 입체적이 되었어요. 이들은 같은 스토리 안에서도 더 주체적으로, 더 적극적으로 행동합니다. 종종 더 영리하거나 더 프로페셔널하기도 해요. 전 원작의 서자산 캐릭터에 공감은 하면서도 정작 사람 자체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안 가졌는데, 같은 역할인 한효주의 캐릭터를 따라갈 때는 그 사람의 매력이 먼저 보였습니다. 설경구와 정우성의 캐릭터도 원작의 캐릭터들에게는 없는 다른 종류의 개성과 매력을 갖고 있고요.

여성 캐릭터의 비중과 역할도 리메이크 버전이 낫습니다. 원작이 밀키웨이 영화치고는 여성 비중이 큰 편이긴 했는데, [감시자들]은 작정하고 이 비중을 더 늘려놨습니다. 하윤주의 비중이 만만치 않긴 하지만, 진경이 연기하는 이실장도 원작의 캐릭터보다 더 역할이 크고 성격도 분명합니다. 이들이 쓸데없이 '여자주인공'처럼 구는 장면도 없고, 불필요한 로맨스도 없습니다.

영화의 외양적 호사스러움도 그렇게 피상적이지는 않습니다. 원작이 나온지 10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그동안 감시의 테크닉과 영역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성장했죠. 다시 말해 이런 이야기에서 영화는 하이테크일수록 좋습니다. 주인공들은 경계선을 살짝 넘기만 해도 민간인 사찰로 넘어가는 아슬아슬한 영역에서 일하고 있고, 영화는 은근슬쩍 이 직업의 윤리적 위험성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원작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주제죠.

액션도 더 좋아졌습니다. 원작에서 거의 실망스러울 정도로 심심하게 그려졌던 도심 총격전은 보다 많은 아이디어와 재료를 통해 훨씬 박진감 넘치는 새로운 장면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원작의 허망한 감정을 전달하지는 않지만 후반부 추격전에도 원작에는 없었던 새로운 액션과 드라마가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리메이크판은 기술적으로 더 많은 것을 더 세련되고 효과적으로 이루어내고 있어요.

'원작과 리메이크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영화냐' 같은 질문에는 답하고 싶지 않습니다. 전 지금 [감시자들] 쪽에 조금 기울지만, 각각의 영화에는 상대방 영화들이 침범할 수 없는 영역과 매력이 있어요. 하지만 이 점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시자들]을 만든 사람들은 밀키웨이 영화를 가져와 우리 식으로 각색하는 과정 중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고요. 그 중 가장 중요한 건 한국 영화쟁이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 구질구질한 관습과 편견들을 다 버리고, 자기 일을 제대로 잘 하는 프로페셔널들의 직업만 제대로 그려도 충분히 재미있고 멋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죠. (13/06/20)

★★★☆

기타등등
이 설정으로 텔레비전 시리즈도 가능하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만든다면 감시조 사람들은 징징거리는 유행가 배경으로 사내연애나 죽어라 하겠죠.

감독: 조의석, 김병서, 배우: 설경구, 한효주, 정우성, 진경, 준호, 다른 제목: Cold Eyes

IMDb http://www.imdb.com/title/tt2969656/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8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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