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노; 연애조작단 (2010)

2010.09.04 15:52

DJUNA 조회 수:22352


[시라노; 연애조작단]은 감독 김현석이 대학시절에 쓴 시나리오 [대행업]을 15년 만에 각색한 것이라고 하니, 김현석 로맨틱 코미디를 이루는 재료들은 태초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예쁘고 아련한 여자주인공 앞에서 온 몸을 바쳐 자신의 쑥맥스러움과 찌질함을 반성하는 남자주인공의 이야기가 이 영화도 지탱하고 있지요. 지겹냐고요? 아뇨, 그렇지는 않아요. 이야기는 여전히 재미있고,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김현석의 재주도 점점 더 능숙해지고 있어요. 지겨울 리가.


영화의 주인공들은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이름을 걸고 연애대행업을 하는 네 명의 연극쟁이들입니다. 원래는 다시 연극을 시작할 돈을 구하려고 부업삼아 시작했던 건데, 그만 편안하게 주저 앉아버렸죠. 이들의 직업은 서툰 초보자들이 완벽한 연애를 할 수 있도록 대사를 써주고 연기지도를 하고 무대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다 이들은 곧 위기에 빠지는데, 의뢰인인 펀드매니저 상용의 상대인 희중이 리더인 병훈의 옛 여자친구였기 때문이죠.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영화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연애라는 행위의 본성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위장과 가식, 거짓말은 주인공들의 직업이고, 불완전함과 현실적 제약은 그들이 극복해야 할 장애이고, 치밀한 프로페셔널리즘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정복하고 뒤흔드는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이죠. 이들의 구분은 명쾌하지만 그렇다고 문제 해결이 쉬워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어떤 상황에 빠졌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해답을 내기가 더 어렵죠. 


당사자들에게는 난감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지만, 관객들에게는 즐겁습니다. 연애대행업이라는 시트콤과 같은 노골적인 설정이 오히려 뻔뻔스러운 코미디를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되지요. 영화는 현실성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스파이물과 진지한 로맨스, 스크루볼 코미디의 영역을 마구 누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붕 뜨지 않는데, 아무리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심리묘사의 리얼리즘은 놓치고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사실적입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은 바뀌었지만 영화의 핵심은 역시 남자의 자기반성에 있습니다. 찌질남의 내부고발은 한국영화에 거의 장르화된 영역이지만, 김현석은 이를 가장 보편적인 감수성에 맞게 요리해내는 사람이죠. 그의 남자주인공은 대책없이 찌질한 쑥맥이지만, 그 사실을 인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반성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를 극복하기 위해 자기희생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영화가 끝나면 우린 그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물론 이런 주인공이 덜 사실적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예술이 늘 현실의 경계선 안에만 머물어서는 안 되는 거잖습니까. 누군가는 그 선 밖으로 나가야죠. 모두가 나갈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단지 [시라노]에서는 그 반성의 마무리가 조금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긴 합니다. 특히 결말 부분에서는요. 한 마디로 이 영화에서는 결말이 너무 많습니다. 이 모든 건 주인공들에게 상처 없는 완벽한 마무리를 제공해주려는 김현석의 배려 때문이죠. 그러는 동안에도 여자 주인공 희중을 위한 마무리는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마무리가 있기는 하지만 조금 더 분명히 노출될 필요가 있다고 느꼈어요. 마지막 에필로그를 덧붙일 여유가 있었다면 그 시간을 희중에게 조금 더 투자를 하는 게 나았을 것 같아요. 에필로그의 내용이야 관객들이 상상으로 커버할 수 있으니까요.


캐스팅은 엄태웅에서부터 이민정에 이르기까지 그냥 좋습니다. 더 좋은 건 그렇게 모은 배우들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김현석의 능력이죠. 송새벽과 최다니엘의 기존 이미지와 매너리즘을 이용하는 무심하지만 정확한 테크닉을 보시죠. 배우들이 알아서 개인기를 늘어놓는 것만으로는 연기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가능성을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아는 감독이 뒤에 버티고 있어야죠. (10/09/04)



기타등등

김현석은 제라르 드파르디외의 [시라노]를 보고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얻었다지만 정작 영화에 나오는 건 호세 페러 버전이죠. 저작권 때문이라 생각합니다만.


감독: 김현석, 출연: 엄태웅, 이민정, 최다니엘, 박신혜, 박철민, 전아민, 송새벽, 류현경, 이미소, 배윤범, 김지영, 권해효, 이대연, 다른 제목: Cyrano Agency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Cyrano_Agency.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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