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 떨어진 사람들 Les maudits (1947)

2015.02.28 23:13

DJUNA 조회 수:2835


르네 클레망의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은 조금 특이한 종류의 잠수함 영화입니다. 유보트 안이 무대지만 전쟁 영화보다는 스릴러에 가깝죠. IMDb에 따르면 신문기사에서 이야기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던데 그 내용이 뭐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비슷한 일이 있긴 있었나 보죠.

시대배경은 1945년. 독일이 항복하기 조금 전입니다. 한 무리의 나치와 나치 협력자들이 유보트를 타고 유럽을 피해 남미로 달아날 계획을 세웁니다. 선원들을 제외하면 나치 요인, 그의 부하, SS 장군, 그의 정부, 그 정부의 이탈리아인 남편, 프랑스인 저널리스트, 스칸디나비아인 과학자, 그의 딸 그리고 누구 것인지 몰라도 고양이 한 마리가 승객이죠. 중간에 잠수함이 수뢰공격을 받아 장군의 정부가 부상을 입자, 그들은 프랑스 해안에 내려서 의사를 한 명 납치해옵니다.

당연히 이 영화의 형식적인 주인공은 의사 선생입니다. 그가 생존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탈출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은 영화에서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짜 관심을 갖는 건 원래 승객들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전쟁영화의 수법이죠. 적을 주인공으로 삼지만 그들을 스테레오타이프로 그리지 않는 것. 이런 규칙이 올바른 손에 들어가면 양심의 가책 없이 주인공들을 괴롭히면서도 의외로 다양한 회색들을 커버하는 입체적인 드라마가 만들어집니다. 잠수함의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이들이 정신적으로 붕괴해가는 과정은 거의 단테의 지옥도를 보는 것 같죠.

기술적인 완성도가 의외로 높습니다. 지금까지 4,50년대에 나온 잠수함 영화를 꽤 보았는데 그 중 이 영화가 가장 사실적이예요. 물론 복잡한 전투 장면이 없긴 합니다. 다큐멘터리나 뉴스 클립에서 많은 걸 가져왔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잠수함의 묘사의 수준은 상당해요. 영화가 스릴러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잠수함 영화가 쓰지 않는 근육들을 활용하고 있기도 하고요. 잠수함을 무대로 한 필름 느와르인 거죠. 물론 당시엔 그런 이름이 없었겠지만.

거친 영화입니다. 전쟁 끝난 뒤에 허겁지겁 만든 티가 나죠. 시간을 들여 시나리오를 수정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전쟁 직후의 현실적 분위기를 그렇게 잘 잡아낼 수 있었던 것이겠죠. (15/02/28)

★★★

기타등등
언어 사실성을 지키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다국적 인물들이 나온다는 핑계로 프랑스어 비중을 은근슬쩍 늘리고 있죠. 하긴 20세기 중반 유럽 지식인들이 공용어로 불어를 한다는 건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감독: René Clément, 배우: Henri Vidal, Florence Marly, Fosco Giachetti, Paul Bernard, Jo Dest, Michel Auclair, Anne Campion, Lucien Hector, Jean Didier, Marcel Dalio, 다른 제목: The Damned

IMDb http://www.imdb.com/title/tt0039615/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7718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