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Krylya (1966)

2015.04.20 22:26

DJUNA 조회 수:2510


[날개]의 주인공은 나데즈다라는 중년 여성입니다. 지금은 어느 작은 소도시의 직업 학교 교장이에요. 겉보기엔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회적으로는 존경 받는 위치에 있고, 독신이지만 입양해서 키운 딸도 있고, 박물관 관장인 남자친구도 있습니다.

영화는 이 외피를 파고 조금씩 안으로 들어갑니다. 지나치게 나이가 많은 남자와 결혼한 딸과 마찰을 빚고, 말썽을 일으켜 학교에서 쫓겨난 학생을 찾아다니는 나데즈다를 보면 이 사람의 삶이 겉보기만큼 잘 흐르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단순히 세대차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사람은 60년대 소련 사회와 잘 어울리고 있지 않아요. 억지로 참으며 그 안에서 적응하려 하고 있지만 그게 잘 안 되는 거죠.

중간중간에 영화는 로만 레데뇨프의 섬세한 음악과 함께 나데즈다의 전성기로 데려갑니다. 나데즈다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와 싸웠던 파일럿 출신입니다. 이 사람의 첫 사랑, 아마 유일한 사랑이었던 남자도 같이 싸웠던 파일럿이었고요. 소련이 아니면 찾기 힘든 부류이죠. 그러니까 이미 젊은 시절에 찬란한 전성기를 보냈지만 그 시기의 흔적은 오래 전에 (남자친구가 일하는) 박물관의 전시물이 되었고 지금은 소련 사회가 은밀하게 강요하고 들이밀고 있는 중년 여성의 역할에 도저히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의 내면이 이 영화의 무대인 것입니다.

억눌리고 느리고 슬픈 영화입니다. 감정을 노골적으로 자극하는 장면은 없지만 나데즈다를 연기하는 마야 불가코바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차가운 회색 어둠 속으로 서서히 침잠해가는 느낌을 받아요. 다행히도 영화는 막판에 이런 꿀꿀함을 날려버리는 짧지만 아름다운 결말을 갖고 있습니다. 너무 논리적이라 다른 건 상상할 수 없는 결말이지만 그래도 직접 보면 사정이 다르죠. 이건 거의 음악적인 선택이니까.

라리사 셰피티코의 첫 장편영화입니다. 1938년생인 감독이 66년에 발표한 영화이니 아직 20대인 젊은이의 작품입니다. 사전 정보 없이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이를 거의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셰피티코는 79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첫 영화의 주인공 나이에 도달하지 못한 채 세상을 뜬 거죠. 그 이후 이 사람이 만들 수도 있었을 수많은 영화들을 생각하면 아쉽기 그지 없습니다. (15/04/20)

★★★☆

기타등등
[날개]와 셰피트코의 다른 작품인 [고양]은 2010년에 남편인 엘렘 클리모프의 작품과 함께 시네마테크 서울에서 상영된 적 있습니다. 지금은 둘 다 DVD로 나와 있는데 아마 크라이테리언 이클립스 DVD와 같은 소스일 겁니다.


감독: Larisa Shepitko, 배우: Mayya Bulgakova, Sergey Nikonenko, Zhanna Bolotova, Panteleymon Krymov, Leonid Dyachkov, Vladimir Gorelov, Yuri Medvedev, 다른 제목: Wings

IMDb http://www.imdb.com/title/tt0061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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