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의 장난]은 아이다 루피노의 마지막 감독작입니다. 루피노가 감독한 영화들 중 가장 큰 영화이고, 50년대에 만들어진 루피노의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접근성도 높은 편이죠. 로잘린드 러셀과 헤일리 밀즈라는 일급 스타들이 나오는 영화이기도 하고요.

세인트 프랜시스 아카데미라는, 펜실바니아에 있는 수녀원 부속 여자기숙학교가 무대입니다. 주인공은 메리 클랜시라는 전학생과 메리의 친구인 레이첼 드버리. 이들 맞은 편에는 이들을 교육하고 통제하려는 원장수녀님이 있죠. 이들이 3년 동안 아웅다웅하며 벌이는 작은 소동들이 영화의 내용입니다. 시트콤으로 만들어도 재미있었을 거 같아요.

영화는 메리를 통제불능의 말썽쟁이로 그리고 있지만, 요새 기준으로 보면 이 아이의 '끝내주는 아이디어'나 그에 바탕을 둔 말썽은 그냥 귀여운 수준입니다. 단지 담배를 엄청 피우는 건 여전히 문제가 되겠지요. 우리나라 텔레비전에서 틀면 블러 구름이 잔뜩 뜰 영화입니다.

메리와 원장수녀의 대립도 생각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습니다. 원장수녀는 툭하면 메리를 학교에서 쫓아버리겠다고 선언하지만 그걸 정말로 믿는 관객들은 별로 없겠지요. 척 봐도 이 둘은 같은 부류니까요. 의지가 굳고 독립적이며 간섭을 싫어합니다.

이 둘을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 것도 무의한 일입니다. 가톨릭 기숙여학교 배경의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죠. 보수적인 종교단체가 보수적으로 운영하는 곳이지만 남자들의 간섭이 거의 없는 이 곳은 오히려 이 시스템에 속한 여성들에게 해방공간이기도 합니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진보적인 대안학교'와 비교해서 이곳이 더 보수적인 공간인 것은 맞지만 여기에 속한 여성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힘을 부여하는 곳이기도 하니까요. 심지어 학생과 학교의 대립 자체도 그런 기회와 힘의 증거입니다. 종종 이들의 행보는 가톨릭이라는 종교의 제한을 가볍게 넘어서기도 하죠.

[천사들의 장난]은 아이다 루피노가 만든 가장 페미니스트적인 영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페미니스트들과 거리를 두고 싶어했던 루피노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보다는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인 [Life with Mother Superior]를 쓴 제인 트래히의 영향이 더 컸을 거 같습니다. 미국에서 최초로 자기만의 광고 에이전시를 연 인물이기도 한 트래히는 루피노와는 달리 적극적인 페미니스트였죠. 물론 루피노가 이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영화를 만들었을 가능성도 큽니다.

의도가 무엇이건 [천사들의 장난]은 딱 60년대에 나올 것 같은 사람좋고 경쾌하고 에너지 넘치고 신나는 기숙학교 코미디입니다. 원장수녀 역의 로잘린드 러셀은 언제나처럼 좋고 헤일리 밀즈가 틴에이저로서 마지막 매력을 뽐내는 작품이죠. 이런 기숙학교물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놓쳐서는 안 되는 작품입니다. 제 주변에서 몸을 뒤틀면서 영화를 보던 남자애들은 동의 안 할지도 모르겠지만. (15/06/13)

★★★☆

기타등등
여성영화제에서는 필름 상영을 했는데 필름 보존 때문이라면서 앞뒤를 끊지 않고 틀었습니다. 그 때문에 릴이 바뀔 때마다 베리만 영화가 되는 현상이...


감독: Ida Lupino, 배우: Rosalind Russell, Hayley Mills, June Harding, Barbara Hunter, Bernadette Withers, Binnie Barnes, Camilla Sparv, Mary Wickes, Marge Redmond

IMDb http://www.imdb.com/title/tt006112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39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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