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 (2011)

2012.06.26 01:34

DJUNA 조회 수:19490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우디 앨런' 캐릭터는 오웬 윌슨이 연기하는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 길 펜더입니다. 지금은 시나리오 일을 접고 첫 번째 소설을 쓰고 있는 그는 약혼녀인 이네즈, 미래의 장인장모와 함께 파리로 관광여행을 왔죠. 그런데 술기운을 쫓으려 파리의 밤거리를 걷던 그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자정이 되자 구식 자동차 한 대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에게 오라고 손짓을 하는 거죠. 무심코 그들을 따라간 길. 그런데 차가 도착한 곳은 1920년대의 파리의 파티장으로, 콜 포터가 자작곡을 부르고 있고, 젤다와 F. 스코트 피츠제럴드가 그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더란 말입니다.

왜 파리, 그것도 20년대일까요. 1920년대의 파리는 영문학 애호가들에게는 매혹적인 곳입니다. 원래부터 국제적인 서구 예술의 수도이기도 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쟁쟁한 영문학의 거장들이 파리에 자리를 잡고 살았죠. 어네스트 헤밍웨이, F. 스코트 피츠제럴드, 거트루드 스타인, 이디스 워튼, 제임스 조이스... 리스트는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이 시대에 대해 판타지를 갖고 있는 사람은 길 펜더뿐만이 아니에요.

펜더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누가 알겠어요. 프랑스에서는 그런 일이 은근히 자주 일어나나보죠. 1901년에도 베르사이유 궁전에 놀라갔다가 타임 슬립을 해서 마리 앙트와네트를 봤다고 주장한 영국인 아줌마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펜더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나 보죠. 그게 초자연현상이건, 펜더의 뇌가 만들어낸 망상이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그 내적 여행이 그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죠.

길 펜더가 밤마다 겪는 시간여행은 유원지 관광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가 만나는 유명인사들은 모두 백과사전이나 전기에서 나온 것과 똑같이 행동해요. 그들이 할 법한 말만 하고 그들이 할 법한 행동만 하지요. 인형 대신 진짜 사람이 돌아다니는 밀랍인형 박물관이랄까요. 물론 유원지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세계도 현실 세계보다 훨씬 재미있는 곳입니다. 헤밍웨이와 문학을 토론하고, 거트루드 스타인에게 조언을 듣고, 피츠제럴드 부부의 사생활을 엿보고, 콜 포터의 노래를 들으며 조제핀 베이커를 구경하는 것이 어떻게 지루할 수 있겠어요.

길의 판타지는 그의 불만스러운 현재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는 현실세계가 싫어요. 할리우드는 저속하고, 약혼녀는 속물이고, 미래의 장인장모는 수구 꼴통. 그런데 1920년대의 파리는 아름답기 그지 없으며, 길거리에는 그가 아는 천재들이 돌아다닙니다. 물론 이슬람 테러리스트도 없고, 산성비도, 핵폭탄도 없지요. 그가 20년대에서 만난 아드리아나도 이네즈에게는 없는 고풍스럽고 로맨틱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습니다.

앨런의 영화가 좋은 건, 이걸 그대로 판타지로 남기는 대신, 이를 발전의 기회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길은 얼마든지 이 경험을 착취할 수 있고 그 안에 영원히 도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판타지에 빠지는 대신, 자신이 왜 그런 판타지에 빠져들었는지, 그를 어떻게 극복해낼 것인지를 알아냅니다. 그리고 앨런은 그를 위해 명쾌한 논리의 드라마를 제공해주죠.

교훈이 어떻건, [미드나잇 인 파리]는 무척 사랑스러운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전 길을 연기하는 오웬 윌슨처럼 반쯤 입을 벌리고 멍한 표정으로 실실 웃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유명인사들이 분장한 배우들이고, 20년대의 파리라고 나오는 것이 세트라는 걸 알면서도 길 펜더의 순진무구한 열광에 동참할 수밖에 없더란 말입니다. 저로서는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결백한 매력이 이 영화에는 있습니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이상적인 파리 관광 영화이기도 합니다. 현실세계에서 우리는 기껏해야 시간의 표면, 그러니까 현재의 파리만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우디 앨런은 보통 가이드들이 박물관이나 궁을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에게 파리의 역사의 일부를 보여주죠. 그리고 파리라는 도시가 아름다운 건 바로 그 역사를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12/06/26) 

★★★☆

기타등등
1. 쥬나 반즈가 잠시 나옵니다. 슬프게도 거의 엑스트라 수준. 하지만 친절하게 대사로 설명해주고 있으니까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앨런은 이 사람, 최소한 이 사람의 이름을 좋아하나봐요.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의 주인공도 쥬나였지요. 

2. 길은 영화 후반에 역시 과거의 파리에서 만난 모 영화감독에게 그가 미래에 만들게 될 특정 영화의 아이디어를 줍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로 그 영화는 원작소설이 있었죠. 

3. 카린 바나스가 후반에 잠시 나왔다는데, 전 전혀 눈치를 못 챘습니다. 

감독: Woody Allen, 출연: Owen Wilson, Rachel McAdams, Michael Sheen, Alison Pill, Corey Stoll, Tom Hiddleston, Kathy Bates, Marion Cotillard, Léa Seydoux, Adrien Brody

IMDb http://www.imdb.com/title/tt1605783/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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