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기

2010.03.05 09:50

DJUNA 조회 수:6309

인간이라는 동물을 정의하는 방법은 여럿 있습니다. 생각하는 동물,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 놀이하는 동물...

모두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럴싸합니다. 하지만 저한테는 더 그럴싸한 정의가 있습니다. 인간은 요리하는 동물입니다. 인간을 제외하고 요리라는 복잡한 일을 하는 동물을 본 적 있나요? 대부분 동물들은 음식을 보면 그냥 먹습니다. 재료를 구해 다듬고 가열하고 뒤섞고 발효한 뒤 먹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어요.

인간들은 언제부터 요리를 시작했을까요? 아마 불을 사용했던 북경 원인들은 고기를 굽는다는 초보적인 요리를 했을 겁니다. 하지만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같은 원시인들도 정말 요리 같은 걸 한 적 없었을까요? 날고기 냄새를 커버하기 위해 풀 같은 걸 함께 먹지는 않았을까요? 타임 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확인하기 전에는 모를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슬슬 비만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음식이란 처절한 생존 수단입니다. 그 중 가장 극단적인 사람들을 [얼라이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친구들의 고기를 먹어야 했다니, 으으... 물론 이게 조금 더 대규모로 발전하면 찰턴 헤스턴 주연의 SF 영화 [소일렌트 그린]이 나옵니다. 헤스턴의 처절한 비명을 들어보세요. "소일렌트 그린은 **이다!"

물론 식인이라는 풍습이 늘 이렇게 처절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는 식인 역시 문명화된 우아한 생활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습니다. 렉터 박사는 무식하게 사람 시체를 뜯어먹는 일 따위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 간을 콩과 함께 맛있게 요리해서 이탈리아산 고급 포도주와 함께 먹습니다. Bon Appetit!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품위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을 먹느냐가 아닙니다. 그건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입니다.

[순수의 시대]를 보면 우린 그 '품위'의 극을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테이블 매너가 가장 발달한 때는 이 영화가 그린 19세기 말인 듯합니다. 르네상스 시대까지 사람들은 포크도 없이 고기를 손으로 들고 마구 뜯어먹었고 나이프로 이를 쑤시며 트림을 꺽꺽 해댔지요. 그 이후 복잡미묘한 진화의 과정을 거쳐 테이블 매너가 정착된 건 부르주와들의 전성시대인 19세기 말이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퇴보 중인 것처럼 보이는군요. 아마 1세기쯤 지나면 생선 나이프와 고기용 나이프의 구별 따위는 없어질 것이고 정장 착용의 의무도 사라질 거예요.

무식하게 주변에 있는 아무거나 불에 구워 뜯어먹는 1단계에서 테이블 매너를 먹는 2단계를 거치면 진정한 미식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영화계는 다양한 미식의 상찬을 다룬 수많은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지요. [바베트의 향연]과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녀의 정부]에 나오는 정식 프랑스 요리, [음식남녀]의 중국 요리, [빅 나이트]의 이탈리아 요리, [달콤쌉싸름한 초콜렛]에 나오는 멕시코 요리... 물론 서민들을 위한 보다 단순하지만 풍성한 식단도 있습니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에 나오는 기름진 남부 요리나 [담뽀뽀]의 라면처럼 말이죠.

맛있는 요리들을 구경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긴 하지만 관객들로서는 완전히 만족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아무리 근사한 요리라도 관객들에게는 그림의 떡입니다. 영화 속 섹스 신을 보고 흥분한 관객들은 나중에 집이나 화장실에서 자위행위를 하면서 욕구를 풀 수 있겠지만 영화 속의 음식이 주는 욕구는 햄버거와 콜라만으론 풀 수 없죠. 아무리 음식 영화가 유행이라지만 영화 속의 음식은 그냥 음식이어서는 안 됩니다. 뭔가 더 의미해야 해요.

음식은 삶과 연결됩니다. [시티 오브 엔젤]의 니콜라스 케이지 천사는 배 맛을 그렇게 알고 싶어했나 봅니다.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인간이 된 브루노 간츠 천사는 음식 맛을 보는 것만으로는 모자랐는지 속편에서는 피자 가게 주인이 되어 있지요. [바이센테니얼 맨]에서 로빈 윌리엄즈 로봇에게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자신이 인간에 더 가까워졌다는 선언입니다.

음식은 종종 섹스와 연결됩니다. 아마 식욕과 성욕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이기 때문이겠죠.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녀의 정부]처럼 처절하고 극단적인 섹스일 수도 있지만, [달콤쌉싸름한 초콜렛]에 나오는 것처럼 격정적이고 로맨틱한 섹스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영화에서는 정말로 음식과 섹스하는 친구가 나오기도 합니다. [아메리칸 파이]를 보세요!

음식은 희극적인 구애가 되기도 합니다. [황금광 시대]의 찰리 채플린은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수줍어 하다가 감자와 포크로 멋진 탭댄스를 선보입니다. 보다 노골적인 장면은 [톰 존스]에 있습니다. 지금도 끝도 없이 패러디 되는 이 장면에서 톰 존스와 모 '직업여성'은 시골 여관에 마주 앉아 하나씩 음식을 먹으며 상대방을 꼬시기 시작하는데, 아마 맛없는 영국 음식들이 이처럼 오감을 자극한 적도 드물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 쓰인 과일 사용법의 일부는 [나인 하프 위크]에서 보다 야하게 변형됩니다. 이렇게 변형된 음식들은 또 [못말리는 비행사]에서 더 말도 안 되게 뒤바뀌고요.

하지만 영화 속에서 대부분 음식들은 보다 얌전하고 로맨틱한 구애에 사용됩니다. [그린 파파야 향기]에 나오는 정갈한 음식들을 생각해 보세요. 세상에 그처럼 아름다운 애정 표현이 어디 있는지. 물론 그건 실력이 되어야 하는 일이고, 대부분 사람들은 '고급 식당과 분위기'라는 보다 만만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물론 그것도 서툴게 사용하면 문제가 많지요.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에서 불쌍한 에드워드 노튼은 두 번이나 결혼반지를 디저트에 넣고 드루 배리모어는 둘 다 먹어버립니다!

음식은 놀이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고전적인 슬랩스틱 농담은 무엇인가요? 바로 파이 던지기입니다. 영화가 생긴 이후로 수많은 파이들이 배우들 얼굴에 던지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음식 가지고 놀면 천벌 받는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진짜 천벌 받을 친구들은 흡혈귀들입니다. 이 친구들에게 먹는다는 일은 희생자를 가지고 논다는 것과 연결되니까요. [미녀 뱀파이어]에서 안느 파리요 흡혈귀는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영화의 문을 엽니다. "오늘은 이탈리아 요리를 먹을까?" 다시 말해 이탈리아 마피아들을 먹겠다는 소리죠.

흡혈귀들을 탓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린 모두 먹기 위해 다른 생물들을 죽여야 합니다. 흡혈귀들은 당연한 일을 하고 있을 뿐이죠. 우리의 식인을 막는 건 이웃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규칙인데, 그게 흡혈귀한테도 통하라는 법이 있나요?

가끔 이런 끔찍한 현실을 폭로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베이브]가 그렇고 [치킨 런]이 그렇죠. 영화를 보면 한 동안 돼지고기나 닭고기는 먹기가 싫어집니다. 채식주의자들의 음흉한 음모가 이 영화들에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웃기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치킨 런]의 홍보가 치킨 전문 패스트푸드점인 파파이스와 연결되었었죠. [치킨 런]을 보고 파파이스에서 치킨을 먹으세요 운운이 홍보 핵심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심했어요.)

지금까지는 영화 속에 나오는 먹는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영화와 먹는 이야기가 꼭 영화 속의 이야기로만 국한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린 영화관에서도 먹습니다. 예전에는 오징어 땅콩이 우리 극장 문화의 전부였지요. 이것도 슬슬 서구화되어 요새는 팝콘과 콜라로 바뀌고 있는 중이지만. 하긴 오징어는 냄새가 심하니 언젠가 보다 참을 만한 팝콘의 버터 냄새에 양보를 해주긴 해야 했습니다. 옆에서 팝콘 먹는 사람들도 못 견디는 예민한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음식들도 영화를 보는 재미의 일부가 아닌가 싶군요. (01/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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