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싸름한 로맨스

2010.03.06 11:13

DJUNA 조회 수:7701

결말을 어디에서 끊느냐에 따라 희극과 비극의 경계선이 결정됩니다. 의심나신다면 유명한 [잠자는 숲 속의 미녀]나 [콩쥐 팥쥐] 같은 작품들의 확장본들이 어떻게 끝나는지 보세요. 아니면 스티븐 손드하임의 유명한 뮤지컬 [Into the Woods]를 감상하시거나요. 동화책에서 "그들은 그 뒤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선언한 뒤에도 삶은 이어지고 종종 그 뒤의 삶은 "영영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의 종언이 약속한 것보다 어둡습니다. 허구라고 해서 사정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불멸의 연인들이 맺어진 이후에도 계속 행복한 상태를 유지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나요? 물론 없습니다. 만약 그런 사람들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들은 분명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일 겁니다.

로맨스에서 비극이 애호되는 건 '사랑의 불멸성'을 외치는 로맨스의 기본 설정과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선언이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로맨틱 코미디와 비극적 로맨스의 경계선이 드러납니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사랑은 극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에 통합이 가능한 예쁜 일상의 일부분입니다. 하지만 비극적 로맨스에서 사랑은 자신이 속해있는 숙주들을 때려잡고서라도 불변한 상태로 존재해야 하는 폭력적인 기생물입니다. 만약 이 경계선 사이에 적절하게 설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한다면 여러분은 현실적이고 달콤쌉싸름한 고급 로맨스의 작가로 인정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객들은 어정쩡한 결말로 로맨스를 끝내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처절하게 죽거나 해리와 샐리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것이 이 장르의 정석이죠. 비극적인 결말은 사랑의 불변성을 확인시켜주고, 완벽한 해피 엔딩은 현실세계에서는 꿈꾸기 힘든 완벽한 결말을 통해 관객들을 대리충족시켜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간 지점에 결말을 놓는다면 관객들은 영화관을 떠나면서 무엇을 가지고 가게 될까요?

그 때문에 이런 종류의 관습적인 로맨스에 사실적인 씁쓸함이 대중화 될 때까진 꽤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비교적 경계선에 놓여 있는 작품인 [카사블랑카]도 사실은 그렇게까지 모호하지는 않지요. 릭은 일자를 떠나보내지만 그들의 사랑은 파리와 함께 영원할 것입니다. 모두가 조금씩 잃은 것은 있지만 결과는 비교적 해피 엔딩이죠. 아마 그 이전에 나온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씁쓸한 로맨스에 더 가까울 겁니다.

할리우드가 사실주의를 받아들이면서 할리우드 장르 로맨스의 스펙트럼은 확장됩니다. 양극으로 쏠려 있던 결말과 분위기가 넓게 퍼지게 되고 그 결과 보다 다양한 사랑의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거죠. 이런 식의 분위기가 본격화되고 유행하기 시작한 건 6,70년대쯤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페미니즘 운동으로 여성의 권익과 자의식이 상승하자 고전적인 해피 엔딩에 필수적인 완벽한 투항이나 고전적인 비극적 로맨스에 필수적인 완벽한 몰락들은 조금씩 줄어갔습니다. 베트남전과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공황 속에서 관객들은 완벽한 형식 속에 갇힌 장르물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했고요. 그리고 50년대 말부터 유럽에서 굉장히 쿨하고 모던한 아트 하우스 영화들이 날아들기 시작했죠.

시드니 폴락의 [더 웨이 위 워]는 이런 시기를 대표하는 고전적인 달콤쌉싸름한 로맨스입니다. 여자 쪽은 그렇게까지 잘생긴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매력적인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사랑만으로는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들에게 닥친 역사적 사건들과 그들 자신의 성격 문제가 그들을 갈라놓지요. 우디 앨런은 [애니 홀]에서 70년대식 달콤쌉쌀한 로맨스의 또 다른 절정에 도달했습니다. 두 명의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뉴요커가 사랑에 빠집니다. 보통 연애 영화라면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야겠지만 우디 앨런은 이것을 시작점으로 잡아 이 두 연인의 관계가 서로에 대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부패되어 가는 과정을 거의 잔인할 정도로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어떻게 보면 이 두 영화를 통해 달콤쌉싸름한 로맨스에 대한 할리우드의 기준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달콤쌉싸름한 로맨스의 핵심은 부패 과정에 있습니다.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맛이 패스트푸드처럼 단순하고, 비극적 로맨스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스테이크처럼 부담스럽다면, 고유의 달콤쌉싸름함을 가진 로맨스 영화들은 잘 발효된 포도주처럼 독특한 풍미를 풍깁니다. 물론 잘 만들어졌다는 조건 하에서 말이지만요. 부패나 발효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건 우리가 불멸성과 완벽함을 기대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유한성과 한계에 대한 인식이야말로 달콤쌉싸름한 로맨스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보통 로맨스라면 해피엔딩으로 끝날 바로 그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달콤쌉싸름한 로맨스라는 장르는 이런 부패과정에서 쾌락을 발견합니다. 시드니 폴락이 전성기에 로맨스 영화의 감독으로 날릴 수 있었던 건 단순히 두 남녀를 찢어놓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 과정에 매력적이고 아이러니컬한 쾌락과 멋을 부여할 줄 알았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그 멋은 어린아이처럼 완벽함을 기대하는 대신 불완전한 현실을 인정할 줄 아는 성인의 쿨한 인식에서 나옵니다.

종종 이런 식의 인식은 젊은이들의 나르시시즘을 만족시키기 위해 보다 어린 캐릭터들이 차용하기도 합니다. 최근에 히트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대표적인 예죠. 이 영화가 지나치게 깔끔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 그들이 미숙한 젊은이들답지 않게 그런 태도를 지나칠 정도로 당연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일 겁니다. 자기 인식보다는 쿨한 유행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죠. 아마 이런 영화들이 쉽게 장르화된 것도 관객들이 이런 이야기에서 어떤 현실 인식을 얻기 보다는 그런 태도에서 쉽게 일차적인 매력을 찾았기 때문일 겁니다. 단순한 관객들을 오랫동안 만족시킬 수 있다면 장르의 수명은 길어집니다. 로맨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죠. (05/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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