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제목에 나오는 '만델라와 차를 탄 남자'는 세실 윌리엄즈입니다. 지금은 거의 잊혀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 인권 운동가지요. 왕년의 학교 교사였고, 무대 연출가였으며, 공산주의자였고, 동성애자였던 이 남자는 1968년 만델라가 체포당했던 당시 같은 차를 타고 있었습니다. 만델라가 신분을 숨기기 위해 그의 운전사로 변장했던 것이죠.


제목과는 달리 만델라와 세실 윌리엄즈와의 관계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물론 그들은 같은 목적을 위해 싸워왔던 투사였으므로 자주 만났던 사이였지만 영화에는 앞에 언급된 것보다 중요한 사건은 언급되지 않습니다. 영화는 만델라를 부스터처럼 던져버리고 세실 윌리엄즈라는 남자의 인생을 파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번갈아 진행됩니다. 첫번째는 세실 윌리엄즈에 대한 다큐멘터리입니다. 두번째는 코린 레드그레이브가 세실 윌리엄즈를 연기하는 일인극이고요. 다큐멘터리가 윌리엄즈의 삶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준다면, 일인극은 시적 상상력을 통해 그의 내면을 뚫어보려 시도합니다.

세실 윌리엄즈의 삶을 따라가는 것은 재미있는 일입니다. 일단 윌리엄즈라는 남자가 상당히 재미있는 인물이니까요.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 덕택에 우리는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권 투쟁 이외에 그 나라의 숨은 동성애 문화에 대해서도 알게 됩니다. 윌리엄즈의 이야기로 흐르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역사로 흐르건, 영화는 재미를 잃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델라와 차를 탄 남자]는 여러 모로 수상쩍은 작품입니다. 우선 만델라와 관계 있다는 이유만으로 윌리엄즈라는 남자의 존재를 의식적으로 상승시키려는 기회주의적인 의도가 거슬립니다. 그리고 정말 영화는 윌리엄즈의 존재를 충분히 입증시키지도 못합니다. 그는 동성애자였고, 인종 차별을 위해 싸웠습니다. 하지만 이 두 정보는 따로 놉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동성애 문화에 대해 알게 된 건 좋지만, 그게 그 사람의 인권 운동과 무슨 상관이라는 말이지요? '동성애자도 싸웠다'는 그렇게까지 의미있는 메시지는 아닙니다.


동성애와 인권 운동이 연결될 뻔한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현재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동성애자에게도 동등한 인권을 보장한 최초의 나라라는 것이죠. 만약 이것이 세실 윌리엄즈와 만델라의 관계가 원인이라면 따로 노는 두 이야기는 하나로 합쳐지겠지요. 하지만 영화는 짐작만 할 뿐입니다. 그거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세실 윌리엄즈는 다큐멘터리보다는 순수한 극영화나 무대극이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만약 작가가 충분히 상상력을 발휘했다면, 윌리엄즈의 흥미진진하고 종종 모순되는 삶은 만델라라는 부스터 없이도 충분히 솟아 올랐을 겁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어정쩡한 결과밖에 얻지 못한 듯 합니다. [만델라와 차를 탄 남자]는 여전히 재미있는 작품이지만 쉴러의 전작에 비교하면 아무래도 떨어집니다. (00/09/14)


★★☆


기타등등

이번 퀴어 영화제에서 본 유일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지나치게 게을렀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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