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숨을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가!

  • crumley
  •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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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치에 대해 잘 모르지만 요즘 나라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냥 한숨만 나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득 내가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숨을 제대로 쉬고 있다는 것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에 대해 알게 된다면
이 세상은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현재 병원에 계십니다.
어머니는 2000년부터 '폐섬유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계십니다.
이 병은 전 세계적으로 아직 치료 방법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수십억을 들여서 폐이식을 하더라도 5년 이상 수명이 연장되지 않는 병입니다.
제가 알기로 미국의 코미디언 제리 루이스가 이 병을 앓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완전한 사랑'이라는 드라마에서 김희애가 앓다가 죽은 병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내에 전문의도 거의 없고 워낙 희귀병이라 약도 보험 처리가 되지 않는 종류가 있습니다.

'폐섬유증'은 간단히 말씀드리면 폐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점점 섬유질화가 되어서 숨을 쉴 수 없게 됨으로써 사망에 이르게 되는 병입니다.
어머니의 병은 수년간 서서히 진행되어서 많이 악화가 되었고
현재 어머니는 24시간 인공 산소 호흡기를 낀 채 생활하고 계십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격렬한 운동을 한 것처럼 숨이 차서
천천히 양치질만 하셔도 숨을 계속 헐떡거리실 정도로 고통스러워하십니다.
그래서 거의 살아있는 송장처럼 움직이실 수가 없고 고작 하실 수 있는게
침대에 누워있다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식사를 하시고 약을 드시고
다시 눕는 것 정도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행동도 숨이 차기 때문에
스스로는 하시기가 힘들고 반드시 타인에게 도움을 받아야만 합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상상하면 된다'라고
숨쉬기의 고통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들은 이후로 어머니의 고통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풀장에서 깊은 곳에 갔다가 다리가 닿지 않아 허우적거리면서 물을 먹고
고통스러워하던 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어머니가 매일 매일 그런 상태로 지내고 계시다고 생각하면
너무 끔찍해서 더 이상 그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폐섬유증'이 더 끔찍한 것은 다른 증상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쉴 새 없이 기침을 하실 때가 많고 하루 종일 가래를 뱉어내는게 일상입니다.
입맛도 떨어지고 음식을 먹는데도 숨이 차시기 때문에 거의 드시지를 못해서
차마 보고 있기가 힘들 정도로 몸은 야윌대로 야위셨습니다.
게다가 어머니는 거의 누워서만 생활을 하시기 때문에 관절 관절이 안 쑤시는 곳이 없습니다.
별다른 조처도 못하고 어머니의 투병 생활을 옆에서 늘 지켜보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저는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저희 어머니는 제가 늘 남들에게 자랑을 하고 다닐 정도로
훌륭한 여성이셨습니다. 국비 장학생으로 프랑스 유학을 다녀오셨고
작년 한 학기는 병이 악화되어서 결국 수업을 하시지 못한 채
올해 정년 퇴임을 하셨지만 2007년까지는 강단에 서는 대학 교수님이셨습니다.
어머니는 '마당발'이라고 불리실 정도로 사교성이 좋으셔서
수많은 사회 문화계의 저명인사들과 교류를 하셨습니다.
저에게 어머니가 결코 완벽한 분은 아니셨고 갈등도 많이 있었지만
적어도 어머니의 사회적 지위를 보면 늘 어머니는 저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랬던 분이 1년도 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초췌하고
타인을 의지하지 않고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힘 없는 모습으로 변해버리셨습니다.
어머니의 자신감 넘치고 활기 있으셨던 모습은 이제 온데 간데 없습니다.
활발하게 외부를 향하던 어머니의 몸은 집안 현관문턱을 넘기는 커녕 방 안에 갇혀버리셨습니다.
어머니는 그 많던 지인들을 더 이상 보실 수 없습니다. 힘들어서 전화 통화도 하실 수 없습니다.
어머니를 문병오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명예, 지위 등 어머니가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던 모든 것들은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로지 수십년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사셨던 '숨'만을
애타게 구걸하면서 사시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순식간에 속수무책으로 '죽음'을 기다리실 수 밖에 없는 외톨이가 되시고 말았습니다..  

음식을 거의 못 드시고 기침과 가래, 신체의 고통으로 잠을 설치시던
어머니는 결국 몇 일 전에 다시 입원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입원을 하시고 나서도 잠을 설치셨고
어제는 하루 종일 고통을 호소하셨습니다.
그리고 고통스럽게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제발! 나 숨 좀 쉬게 해주세요! 숨 좀 쉬게.."
세상에 부족함이 없어 보이셨던 어머니가 애타게 '숨'을 구걸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제가 지금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아무 고통없이 '숨'을 쉬고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별 것 아니지만 이 깨달음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졌습니다.
뭔가 위로(?)의 말을 건네주고 싶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숨'을 쉬고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많이 힘들지만 아무 고통 없이 '숨'을 쉬고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은 아닐까요?
'숨'을 쉬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에 감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세상은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제가 아무 고통 없이 마음껏 '숨'을 쉴 수 있다는게 이렇게 감사한 것은 처음입니다.
그래서 이 글을 꼭 쓰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는 위독하시고 저는 여전히 많은 고통 가운데 있지만
지금껏 당연시 여겼던 '숨'을 쉬고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지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냥 현실을 바라보면서 저의 순진하고 순수한 소망을 담은 글로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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