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구왕 (2013)

2014.08.17 17:00

DJUNA 조회 수:12763


[족구왕]이라는 제목부터 속이 참 빤히 보이잖아요. 아무리 멋지게 치장을 해도 족구는 이름부터 구린 족구일 뿐이고, 족구로 무언가를 해봐야 이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대학 취미 생활 수준에서 벗어나기 어렵죠. 주인공이 동남아시아로 내려가 세팍타크로 선수가 되지 않는 한. 결국 영화는 이 경기의 촌스러움을 일부러 과장한 코미디일 수밖에 없고 정말로 그렇습니다.

말년병장인 주인공 만섭이 군대에서 족구하는 장면부터 영화는 구질구질합니다. 그는 제대하자마자 다니던 대학에 복학하는데, 역시 그림은 구질구질. 사실 구질구질함을 넘어서 조금 무섭기도 합니다. 그가 머무는 기숙사는 그림부터 분위기에 이르기까지 딱 군대예요. 단지 군대와는 달리 제대라는 탈출구가 없을 뿐이죠.

만섭은 별 불만없이 이런 세상에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군대 가기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학교 족구장이 없어진 건 참지 못하겠습니다. 그는 족구장 부활을 위해 운동을 시작하는데, 어쩌다보니 그 와중에 캠퍼스 퀸인 안나와 엮이게 되고 또 어쩌다보니 안나의 '썸남'인 전직 축구 국가대표 강민과 족구 대결을 해서 이깁니다. 그 동영상이 교내에 퍼지면서 학교엔 족구가 유행하게 되고요.

그 뒤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런 부류 스포츠 영화의 전형을 따릅니다. 학교에서 족구대회가 열리고 만섭과 강민 모두가 참가하지요. 단지 영화에서 결과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족구대회에서 이긴다고해서 무언가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죠. 만섭은 단지 자기에게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은 일을 할뿐입니다. 비록 그것이 시스템이 강요하는 자신의 미래에 어떤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요.

여기서부터 주성치를 포함한 8,90년대 대중영화의 레퍼런스를 언급하는 게 순서인데, [족구왕]에는 이들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비극적인 낙천주의'랄까, 그런 게 있습니다. 주성치보다는 니체나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자들을 끌어와야 더 그럴싸할 거 같죠. 만섭이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은 여전히 회색이고 그의 미래도 어둡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섭은 '삶을 즐기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여기에 [백 투 더 퓨처] 삼부작을 빌어 타 장르의 아이디어를 살짝 삽입하는데, 그 덕택에 영화는 예상하지 못했던 낭만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그래도 영화는 충분히 즐겁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회색이고 냉정해도 작정하고 즐기려는 사람을 막을 수는 없는 거죠. 그 사람이 카메라 앞에 있건, 뒤에 있건요. 저로선 우리도 그들 중 한 명이 될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14/08/17)

★★★

기타등등
'술취한 애를 모텔로 끌고가기'가 쉽게 다룰 수 있는 농담 소재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그럭저럭 좋게 풀리지만.


감독: 우문기, 배우: 안재홍, 황승언, 정우식, 류혜린, 이세랑, 강봉성, 황미영, 심의섭, 박호산, 진태철, 다른 제목: The King of Jokgu

IMDb http://www.imdb.com/title/tt358783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3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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