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 (2010)

2010.11.15 09:15

DJUNA 조회 수:15655


[두 여자]의 홍보팀이 감추고 싶어하는 비밀 하나. 이 영화는 얼마 전에 국내에도 개봉된 핀란드 영화 [블랙 아이스]의 리메이크입니다. 물론 언제까지 숨기려고 그랬던 건 아니죠. 어차피 크레디트에서는 밝혀야 하는 거고, 시사회가 끝나자마자 연관 검색어로 [블랙 아이스]가 뜨는 건 시간 문제였으니까. 그래도 이 당연한 정보를 보도 자료를 통해 끝까지 밝히지 않은 건 정직해보이지 않습니다.

영화가 대신 내세우고 싶어하는 건 [두 여자]라는 영화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와 [아내가 결혼했다]를 잇는 정윤수 감독의 '결혼 3부작'의 마지막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이게 자랑해야 할 것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이 중 정윤수가 직접 이야기를 만든 건 하나도 없고, 두 편은 원작이 있고... 이들의 공통점은 일반적인 일부일처제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파격적'으로 그린다는 건데, 사실 요새 세상에 이런 걸 보고 파격이라는 말을 쓰는 것부터가 웃기는 거죠. 기껏해야 귀엽다는 말이나 들을 정도.

[블랙 아이스]를 보신 적 없으시다고요? 그럼 내용을 모르시겠네. 이런 이야기입니다. 대학교수도 하는 건축가 아저씨가 제자랑 바람이 납니다. 그 사실을 눈치챈 산부인과 의사인 아내는 제자를 미행하는데, 그러다가 엉겁결에 제자가 강사로 일하는 학원(원작에서는 태권도 학원, 리메이크에서는 요가학원)에 등록하게 됩니다. 두 사람은 친구가 되고, 제자는 아내에게 자신의 연애담을 털어놓고, 그 뒤로 온갖 복잡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페트리 코트비카의 원작은 일종의 게임이었습니다. 그는 세 사람을 난처하고 까다로운 입장에 던져놓은 뒤, 이들을 자극하고 관찰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처음엔 상상도 못했던 온갖 가능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죠. 그 결과물은 미스터리, 추리, 소프트 포르노, 코미디, 드라마의 잡탕이었습니다. 거의 매 시퀀스마다 장르가 바뀌었고 결과는 거의 예측불가능했지요. 이건 재미있는 놀이였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의 즐거움은 리메이크에서는 거의 통하지 않습니다. 원작과는 달리 이미 완성된 이야기로 시작하니까요. 이야기의 재미는 사라지고, 결혼이 어쩌고, 사랑이 어쩌고 하는, 무의미하고 관념적인 고민들이 그 자리를 채웁니다. 그러는 동안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그들이 다루고 있는 상황이 얼마나 웃기고 괴상한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아내가 제자의 임신 사실을 확인하려 벌이는 소동 말입니다. 그게 그냥 드라마로 풀 장면입니까? 당연히 코미디여야 하지 않습니까.

이 영화에도 코미디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은 코미디죠. 대부분 자극과 파격을 의도할 때 나옵니다. 도입부에 나오는 섹스신부터 그렇습니다. 온갖 야동들에 단련이 되어 있을 요새 관객들에게 파격적인 섹스를 보여주겠다는 아이디어부터가 잘못된 거죠. 한마디로 "난 이렇게 파격적인 상황과 장면을 다루고 있어!"라고 외치는 장면들은 모두 코미디입니다. 아, 하나 더 있어요. "나는 잘 나가는 중상층 인텔리 전문직종 종사자다!"라고 외치는 장면들 역시 코미디입니다. 산부인과 의사 흉내와 건축가 흉내 중 하나만 고르라면, 건축가 흉내가 더 웃깁니다.

캐릭터들 역시 나쁩니다. 원작의 캐릭터들은, 육체적으로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을지 몰라도, 재미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좋아할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꾸준히 관객들의 호기심을 유발했어요. 그리고 그들은 엄연히 자기 감정의 주체였습니다. 하지만 [두 여자]의 캐릭터들은 몽땅 아침연속극에서 따온 기성품들입니다. 매력이라고는 약에 쓰려고 해도 찾아볼 수 없고 영화 내내 징징거리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네들이 세상에서 가장 진지하고 쿨한 존재인 줄 압니다. 특히 척 봐도 강남 아줌마들의 악세서리/돈줄로밖에 안 보이는 남편이라는 작자의 심각함은 어이가 없습니다. 적어도 원작의 건축가 아저씨는 자신의 야비함을 대놓고 드러낼 줄 알았죠.

섹스신들에 대해 말하라면, 글쎄요. 너무 많습니다. 더 이상한 건 이들이 참 안 예쁘게 찍혔다는 것입니다. 일부러 작정하고 90년대 초 에로 영화 분위기를 내려고 작정한 것 같아요. 배우들의 육체적 매력을 적극적으로 살릴 생각이 없는 건 분명한 것 같고. 섹스신도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영화의 화면이 탁하고 구질구질한데, 이유가 뭔지 모르겠군요. (10/11/15)

★☆

기타등등
영화를 보면서 내용보다 더 궁금한 게 하나 있었으니, 건축가 아저씨 사무실에 있는 포커 삼엽기 모델은 어디서 산 건가요.


감독: 정윤수, 출연: 신은경, 심이영, 정준호, 이선진, 최재원, 권성민, 다른 제목: Love, in Between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Love_v__in_Between.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3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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