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그림 할머니의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잠자리에 든 손자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따뜻하고 기분 좋은 설정처럼 들리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오그림(그림 형제의 '그림'을 아일랜드화시킨 이름이죠) 할머니는 심술궂기 그지 없는 사람이거든요.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잠자는 공주는 등장할 기회도 갖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오그림 할머니도 그러려고 했겠죠. 하지만 이야기를 풀다보니 할머니는 공주 대신 초대받지 못한 요정에게 감정이입을 해버립니다. 그 요정을 '나이 든 요정'으로 설명하고 자신과 동일화시킨 할머니는 자신이 현대사회를 사는 노인으로서 겪는 분노의 감정을 이야기 안에서 폭발시켜버립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노인들에게 잘하자'와 같은 교훈으로 이어질 수도 없으니, 아까도 말했지만 오그림 할머니는 그냥 심술궂은 인물로, 다른 사람들이라면 적당한 선에서 풀었을 이야기를 극단적인 파국으로 몰아가기 때문입니다. 보고 있으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손자가 불쌍해집니다. 표정을 보아하니 이런 일을 겪는 게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에요.

 

영화는 3D와 2D를 동시에 쓰고 있습니다. 할머니가 손자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부분은 3D 컴퓨터 그래픽이고, 이야기 장면은 2D입니다. 둘 다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할머니 캐릭터도 양쪽 차원의 세계 모두와 자연스럽게 어울립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각본을 쓰기도 한 캐서린 오룩의 할머니 목소리 연기는 일품입니다. 검색해보니 이 작품와 캐릭터는 오룩의 스탠드업 코미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곧 시리즈로 제작될 모양입니다. (10/03/08)

 

★★★

 

기타등등

 

올해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분 후보작입니다. 여기에서 보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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