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극장 Theatre of Blood (1973)

2017.01.02 05:56

DJUNA 조회 수:1813


빈센트 프라이스는 그렇게 셰익스피어 영화를 하고 싶어했대요. 하지만 B급 호러 영화 배우로 이미지가 고정된 터라 그런 기회가 쉽게 찾아오지 않았죠. 소문에 따르면 [피의 극장]은 프라이스가 자신의 출연작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하던데, 셰익스피어에 대한 그의 열망을 고려해본다면 이해가 가요. 이 영화는 빈센트 프라이스를 위한 셰익스피어 영화니까요. 그에게 셰익스피어의 주옥과 같은 대사를 읊을 기회를 주면서도 빈센트 프라이스적인 캠피한 감성이 줄줄 흐르는 호러 영화인 것이죠.

이야기는 단순해요. 6, 70년대에 많이 나왔던 연쇄살인 또는 대량살인의 이야기죠. 심지어 프라이스 자신도 이와 아주 비슷한 내용의 영화를 몇 년 전에 찍은 적 있죠. [The Abominable Dr. Phibes]라고. 그 영화에서 그는 아내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죽이는 살인마로 나왔어요. 이 영화에서도 그는 복수를 하기 위해 날뛰는 연쇄살인마인데, 단지 동기가 좀 달라요. 그가 연기하는 라이언하트는 셰익스피어 배우로, 자신에게 악평을 한 연극 비평가들을 셰익스피어 희곡에 나와 있는 상황에 맞추어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읊으면서 살해합니다. 호러로 찍은 셰익스피어 메들리인 셈입니다.

비평가들의 영향력이 이전과 같지 않고 인터넷 댓글과 별점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지금 와서 보면 이 설정은 어느 정도 과거에 속한 것처럼 보입니다. 아니, 20세기라고 해도 비평가 협회상 같은 거 한 번 못 받았다고 살인마가 되어 미쳐 날뛰는 배우의 설정은 지독하게 과장된 것이죠. 하지만 이는 예술가와 비평가 사이의 영원한 반목을 호러 코미디의 틀에서 다루기 딱 좋은 설정이고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불려나온 수많은 배우들은 모두 그 기회를 즐겼을 거라 생각합니다. 비평가들을 죽이는 프라이스도 재미있었겠지만 비평가들을 연기한 배우들도 재미있었겠죠.

논리고 뭐고 없이, '어떻게 하면 최대한 어처구니 없는 상황 속에서 최대한 재미있게 사람을 죽일까'에 집중하는 영화입니다. 하긴 누가 이런 영화를 보면서 개연성 같은 걸 따지겠어요. 피가 많이 나올수록 좋고 어처구니 없을수록 좋으며, 프라이스는 셰익스피어 대사를 많이 읊을수록 좋은 거죠. 하여간 프라이스는 이 영화에서 [줄리어스 시저]에서부터 [리어왕]까지 오가면서 정말 날고 깁니다. 단지 그가 라이언하트를 진짜로 훌륭한 셰익스피어 배우로 연기했는지는 알 수 없어요. 솔직히 영화를 보면 비평가들의 안목이 맞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속의 라이언하트는 일급의 호러/코미디 배우가 완벽한 오버액팅으로 창조해낸 이류배우거든요. 비평가들의 말을 듣고 현대물을 연기하며 배우로서 자신을 돌이켜봤다면 진짜 일급의 배우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17/01/02)

★★★

기타등등
전 이 영화를 AFKN에서 처음으로 봤죠. 아, 그리운 금요일 밤의 호러영화들.


감독: Douglas Hickox, 배우: Vincent Price, Diana Rigg, Ian Hendry, Harry Andrews, Coral Browne, Robert Coote, Jack Hawkins, Michael Hordern, Arthur Lowe, Robert Morley, Dennis Price, Milo O'Shea, Eric Sykes

IMDb http://www.imdb.com/title/tt0070791/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9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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