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키 Jackie (2016)

2017.01.18 20:37

DJUNA 조회 수:6511


IMDb에서 재클린 케네디를 연기한 배우들의 리스트를 뽑아봤습니다. 재클린 스미스에서부터 케이티 홈즈에 이르기까지 참 길더군요. 하긴 재클린 케네디만큼 대중의 상상력과 궁금증을 자극했던 미국 여성은 그리 많지 않지요. 이 인물이 엮일 수밖에 없었던 화려한 세계와 비극적인 드라마 역시 이야기꾼을 자극합니다.

하지만 우린 여기서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화려한 배경과 장식들을 제거하면 재클린 케네디란 사람에게서 무엇이 남을까? 우린 이 인물의 실체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 실체에 과연 그런 노력이 필요할만한 가치가 있을까? 아무리 형편없는 대통령이라도 우린 그 인물에서 정치적 의미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퍼스트 레이디는 뭐하는 사람인가요? 미셸 오바마나 힐러리 클린턴에 익숙한 우린 미국 대통령의 아내라는 위치가 얼마나 이상한지 종종 잊습니다. 앞으로 다시 신경쓰게 되겠지만.

파블로 라라인의 [재키]는 두 개의 실제 소스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는 시어도어 H. 화이트가 라이프에 쓴 [For President Kennedy: An Epilogue]라는 재클린 케네디와의 인터뷰예요. 영화는 화이트가 재클린 케네디를 방문해서 인터뷰를 하고 그 과정 중 과거를 회상한다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1962년에 만든 [A Tour of the White House]라는 다큐멘터리로, 재클린 케네디가 텔레비전 시청자들에게 백악관 내부를 소개하는 내용이죠. 이 다큐멘터리의 상당부분이 재현되어 회상장면에 삽입됩니다.

영화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달라스에서 존 F. 케네디가 암살당한 뒤부터 장례식까지의 며칠간입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죽고 린든 B. 존슨이 대통령의 자리를 물려받으면서 재클린 케네디가 퍼스트 레이디라는 직책에서 밀려난 직후지요. 그러니까 이 정도면 [A Tour of the White House]에서 미국인들이 보았던 재클린 케네디의 공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인간 재클린 케네디를 들여다 볼 기회입니다.

뭐가 보이나요? 글쎄요. 영화가 그리는 자연인 재클린 케네디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에요. 어쩌다보니 미국 대통령이 된 남자와 결혼한 사교계 여성이고 그게 전부입니다. 남편이 죽고 허울뿐인 직책이 사라지자 재클린 케네디는 완전히 존재의미를 잃고 중요한 일을 하는 남자들의 세계의 주변으로 밀려납니다. 익숙해진 세계가 무너져버리고 전에도 확신하지 못했던 자신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이켜보게 된 것이죠.

허구의 인물이라면 상당히 묵직한 주인공이 될 기회겠죠. 하지만 [재키]는 재클린 케네디를 그렇게 자유롭게 쓸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영화 속 재클린 케네디는 여전히 비극적인 주인공이지만 자신의 평범함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때문에 어떻게든 이 혼란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하려는 일련의 시도는 종종 처량해보입니다. 그 때문에 영화가 필요이상으로 잔인해보이기도 하죠. 그건 나탈리 포트먼의 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포트먼의 연기는 정말 훌륭한데, 캐릭터에 본능적으로 공감하는 종류는 아니에요. 그보다는 과학적으로 관찰한 연구 대상의 행동을 연구 결과의 해석을 통해 재현한 과정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영화 속 재클린 케네디는 답을 찾아냅니다. 자신과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재료로 한 신화를 만들어내고 그 안에 스스로를 은폐하는 것이죠. 바로 카멜롯의 전설인 것입니다. 이것은 위장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퍼스트 레이디로서 봉사했던 바로 그 사람들을 위한 최선의 서비스이기도 합니다.

라라인이 그린 재클린 케네디와 그를 통해 그린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 사실일까요. 그건 저도 모르죠. 영화를 보다보면 영화가 그리는 이런 신화화 과정 자체가 또다른 신화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영화 속 재클린 케네디는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것보다 훨씬 정련된 비극의 주인공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17/01/18)

★★★☆

기타등등
화면 비율은 1.66:1입니다. 제대로 마스킹해주는 곳이 없지는 않겠죠.


감독: Pablo Larraín, 배우: Natalie Portman, Peter Sarsgaard, Greta Gerwig, Billy Crudup, John Hurt, Richard E. Grant, Caspar Phillipson, Beth Grant, John Carroll Lynch, Max Casella

IMDb http://www.imdb.com/title/tt1619029/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4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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