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맥베스 Lady Macbeth (2016)

2017.08.08 06:01

DJUNA 조회 수:4442


제목이 좀 안 좋죠. 이 영화는 [멕베스]를 레이디 맥베스 관점에서 재해석한 영화가 아닙니다. 19세기 러시아 작가 안드레이 레스코프의 중편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를 각색한 작품이죠.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에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이란 제목으로 이 책의 번역본이 다시 나왔습니다.) 각색하면서 영화의 배경을 러시아에서 잉글랜드로 옮겨버렸으니 캐릭터와 내용을 보다 정확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므첸스크'라는 지명이 빠지고 맙니다. 레이디 맥베스가 주인공이 아니면서 제목이 [레이디 맥베스]가 된 영화가 나오고 만 거예요. 그렇다고 [잉글랜드의 레이디 맥베스]라고 부른다면 이상해보이겠죠?

전 이 이야기를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로 처음 접했는데, 별로 안 좋아했습니다. 제가 즐기기엔 지나치게 끈적끈적하다고 느꼈죠. 부유하지만 지루한 중년 남자에게 시집 온 젊은 여자가 가난한 농부와 눈이 맞고 결국 시아버지, 남편 기타등등을 살해한다는 이야기예요. 굉장히 흔해빠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하지만 나중에 읽은 안드레이 레스코프의 원작은 의외로 재미있었죠. 이런 이야기에서 사람들이 기대할 법한 느끼한 선정성을 싹 빼버린 우아하고 빠르고 간략하고 냉정한 작품이었어요. 여전히 굉장히 19세기 러시아적이지만 은근히 20세기 이후 범죄소설 분위기가 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이게 어떻게 각색이 되었나 궁금했습니다. 바로 위에서 말했지만 레스코프의 원작은 굉장히 러시아적이에요. 주인공이 겪는 권태는 너무나도 러시아적인 권태이고 후반부에 주인공이 겪는 역경도 19세기 러시아에서만 먹힙니다. 이걸 어떻게 다루려고?

영화는 원작의 러시아성을 대체할 특별한 무언가를 넣는 대신 비슷한 시기 유럽 여성이 공유했을 보편성에 집중합니다. 물론 영화가 시대배경으로 삼고 있는 빅토리아 조 영국에 이 이야기는 썩 잘 어울려요. 하지만 원작의 러시아만큼 분명하게 튀지는 않죠. 자동적으로 일반화되는 것입니다. 그럼 오로지 러시아에서만 먹히는 후반부는? 영화는 그 부분을 댕겅 잘라내고 훨씬 깔끔한 새로운 결말을 붙입니다. 보면서 [아가씨] 생각을 했어요. 원작을 읽은 독자들은 이후에 펼쳐질 주인공의 역경을 기다리는데 그게 없어요!

여전히 전 레스코프의 러시아적 터치가 아쉽지만 영화는 가부장제도 밑에서 억압된 젊은 여자의 욕망이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극단적으로 터져 나오는 과정은 냉정하고 차분하게 잡아내면서 영화만의 재미를 찾아냅니다. 갑작스러운 새 결말도 이 영화의 흐름 안에서만 보면 재미있는 거 같아요. 심지어 원작보다 더 냉정하고 야비해졌죠. 영화는 러시아를 지운 대신 그 자리에 몇몇 흑인 캐릭터들을 넣어 인종간의 갈등과 편견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깔았는데 이 역시 재미있는 터치입니다. 하긴 19세기 영국이 우리가 사극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백인 위주일 수는 없었겠죠. 제국이었으니.

플로렌스 퓨의 이야기를 빼놓고 이야기를 마칠 수는 없죠. 하는 행동만 보면 연기하기 위험한 캐릭터인데 잘 살렸습니다. 영화 내내 적절하게 공감을 자극하면서도 아무 예고도 없이 피도 눈물도 없는 괴물로 변하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그게 참 당연해보인단 말이죠. (17/08/08)

★★★

기타등등
후반부 이야기가 없는 건 제작비 때문이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그 부분 이전엔 몇 안 되는 배우들이 옛날 저택 여기 저기를 옮겨다니는 장면 뿐입니다. 하지만 후반부를 진짜로 만든다면 세트, 특수효과, 엑스트라가 필수적이죠.


감독: William Oldroyd, 배우: Florence Pugh, Cosmo Jarvis, Paul Hilton, Naomi Ackie, Christopher Fairbank, Golda Rosheuvel, Anton Palmer

IMDb http://www.imdb.com/title/tt429160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4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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