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행 (2017)

2017.12.01 22:24

DJUNA 조회 수:2537


김대환의 두 번째 장편작인 [초행]은 전작인 [철원기행]처럼 추운 겨울에 집밖에서 고생하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연애 7년째이고 지금은 동거 중인 커플이에요. 여자인 지영은 종편방송국 계약직이고 남자인 수현은 미술 강사죠. 둘 다 돈은 별로 못 벌고 장래도 불안합니다. 그렇다고 처세술에 능한 것도 아니고 연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모에게 의지하기도 좀 그렇고. 게다가 지영은 임신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이런 상황 속에서 이들은 분주하게 양쪽 부모집을 오갑니다. 인천에 있는 지영의 부모네 집을 방문했다가 삼척에 있는 수현의 부모네 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여정이 이 영화의 전부예요.

특별히 숨은 의미를 뒤에 감추고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반대로 주인공, 스토리, 주제 모두 깔끔하고 명확해요. 두 젊은이들은 결혼이 두렵습니다. 부모가 되는 것도 두렵고 자기네들 부모처럼 되는 것도 두려워요. 미래는 흐릿하고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릅니다. 양쪽 부모네 집을 방문하는 여정은 이런 불안함을 가중시킬 뿐이죠.

당연히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스토리가 아니라 이 두 인물의 불안과 공포를 최대한 사실적이고 설득력있게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김대환은 이 감정을 위에서 내리붓는 대신 두 주인공과 함께 겨울여행을 떠나며 함께 탐구하려고 합니다. 이 영화는 즉흥연기의 비중이 높고 어쩌다가 주어진 외부 환경과 아주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룹니다. 그 외부 환경이란 갑자기 쏟아지는 눈이나 아슬아슬하게 차 앞을 스쳐가는 비둘기와 같은 것도 있지만 2016년 겨울의 촛불시위도 포함됩니다. 어쩌다보니 [초행]은 2016년 한국의 정치적 분위기를 다큐멘터리처럼 기록한 영화가 되어버렸습니다. 촛불시위가 주인공들에게 답을 주냐고요? 그럴 리가요. 세상이 그렇게 쉬울 리가.

무척 사실적인 영화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사실적이란 건 욕설과 폭력으로 세상의 추잡함을 폭로하겠다고 주장하는 한국 알탕영화식 사실성과 거리가 멀죠. 영화 후반의 1,2분을 제외하면 욕설이나 폭력은 없습니다. 주인공들은 모두 수줍고 섬세한 사람들이라 그런 길로 가는 게 가능하지도 않고. 대신 영화는 꼼꼼하고 정교합니다. 다들 고함과 비명 속에서 놓치고 지나가는 작은 울림들을 배우들과 함께 하나씩 모두 잡아내는 영화죠. 과도한 자의식은 찾아볼 수도 없지만 아름답고 가슴 아리고 정직합니다. (17/12/01)

★★★☆

기타등등
차 안의 대사는 알아듣기가 좀 힘들었어요. 일상소음이 많이 섞여있고 두 주인공 모두 목소리가 조그만 사람들이라. 서독제에선 영어 자막을 틀어줄 테니 도움이 되겠군요.


감독: 김대환, 배우: 김새벽, 조현철, 기주봉, 조경숙, 정도원, 문창길, 길해연, 류제승, 다른 제목: The First Lap

IMDb http://www.imdb.com/title/tt742608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62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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