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터슨 Paterson (2016)

2017.12.22 00:00

DJUNA 조회 수:11021


짐 자무쉬의 신작 영화 제목 [패터슨]은 뉴저지의 소도시 이름이기도 하고 주인공 이름이기도 합니다. 패터슨시에서 버스 운전사로 일하는 패터슨이라는 남자의 이야기예요. 이 영화에서 패터슨을 연기하는 배우가 애덤 드라이버라는 사실도 밝혀야겠군요. 버스 드라이버를 연기하는 애덤 드라이버. 이 영화에는 이런 반복이 많습니다. 애덤 드라이버가 정말 이름 때문에 캐스팅된 건 아니겠지만.

영화가 다루는 건 패터슨이 일주일 동안 겪는 일상입니다. 6시 좀 넘어서 일어나고 아침을 먹고 출근해서 버스를 몰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집에서 기르는 잉글리시 불독인 마빈과 함께 외출해서 근처 바에 들러 한 잔 하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게 반복이 돼요. 출근 안 하는 토요일과 일요일은 이 일상이 조금 깨지고 금요일부터는 조금 드라마틱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월요일에는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죠.

이 반복되는 일상 동안 우린 패터슨이라는 남자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됩니다. 그는 역시 패터슨 출신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애독자이고 아마추어 시인이에요. 매일 버스를 몰고 나가기 전에 작은 노트에 시를 쓰지요. 그의 아내 로라도 늘 창의적인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인테리어를 손보기도 하고 기타를 연습하기도 하고 새로운 레서피로 요리를 하기도 하죠. 패터슨이 중간중간에 만나는 이웃들도 조금씩 예술가입니다. 아마추어 래퍼도 있고 패터슨처럼 비밀 노트에 시를 쓰는 여자아이도 있지요. 며칠 전에 언급한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는 평범한 사람들의 예술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대중에게 공개될 기회가 없을 이런 소소한 창작 활동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사실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예술작품들 99 퍼센트는 이렇게 일상 속에서 조그맣게 만들어져 소실되어 가잖아요. 보존되는 걸작들은 오히려 희귀한 예외지요.

영화 속 패터슨시는 아마 실제 패터슨시와 큰 차이가 있을 겁니다. 영화가 그리는 도시의 일상은 아마추어 시인 패터슨을 거친 것으로, 그의 시와 마찬가지로 정련되어 있습니다. 엄격한 정형시 또는 변주곡을 생각하시면 될 거 같아요. 매일 비슷비슷한 일들이 운율처럼 반복되지만 그 안에서 영화는 꼼꼼하게 걸러낸 소소한 다양성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그게 주말로 이어지면 라벨의 [볼레로]가 그러는 것처럼 살짝 음량이 높아져요. 여기서 일상과 노동은 시인의 자유를 막아서는 핸디캡이 아니라 창조성을 불러일으키는 시의 규칙입니다. 페트라르카에게 소네트가 그랬던 것처럼. 아, 패터슨은 페트라르카도 언급합니다. 페트라르카에게 로라가 그랬던 것처럼 그의 아내 로라도 영감의 원천이고요.

[패터슨]은 엄격하고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일상의 재료로 만들어진 완벽한 구성의 고전적인 예술작품이지요. 자무쉬의 영화 중 가장 사랑받을 영화는 아닐지 몰라도 예술가 자무쉬의 정점, 적어도 하나의 정점을 찍은 영화입니다. 언제나처럼 담담하고 무덤덤하지만 놀랄만큼 넓은 스펙트럼의 감정과 경험을 커버하고 있고요. (17/12/22)

★★★★

기타등등
1.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걱정하며 챙겨보았던 건 사실 패터슨이 아니라 그의 아내 로라였죠. 능력에 비해 의욕이 과하고 가벼운 여자 조연처럼 흐를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주연도 아니고 '시인의 아내'라는 위치였으니 감독의 지지를 받지 않을 가능성도 컸고. 하지만 후반 특정 장면에선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관객들은 로라를 실제 이상으로 가볍게 보았고 그게 영화의 의도였을지도 몰라요. 로라의 일주일은 우리가 못 본 또다른 훌륭한 영화였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2. 패터슨 집안에서 기르는 마빈을 연기한 개는 넬리라는 암컷입니다. 영화를 찍은 지 몇 달 뒤에 암으로 죽었어요. 이 영화는 넬리에게 헌정되었습니다.

3. 후반에 나오는 일본인 시인을 연기한 나가세 마사토시는 얼마 전에 나온 [빛나는]의 주연이었죠. 전 이 영화에서 더 좋았습니다. 짐 자무쉬와는 [미스터리 트레인]에서 전에 작업한 적이 있어요.

4. 패터슨이 쓰는 시는 론 파젯의 작품입니다. 중간에 나오는 여자아이의 시는 짐 자무쉬 자신의 것이고요.


감독: Jim Jarmusch, 배우: Adam Driver, Golshifteh Farahani, Nellie, Rizwan Manji, Barry Shabaka Henley, Chasten Harmon, William Jackson Harper, Masatoshi Nagase, Sophia Muller

IMDb http://www.imdb.com/title/tt524702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144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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