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모나 Ramona (1910)

2018.03.31 21:52

DJUNA 조회 수:4204


D.W. 그리피스는 그의 최초의 장편영화를 KKK 홍보물로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이 사람을 백인우월주의자라고 부르는 건 너무 단순합니다. 그냥 당대의 한심한 한계에 갇혀 있었고 그걸 몰랐던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었던 겁니다. 그렇다고 [국가의 탄생]을 변호할 필요는 없지만,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의외로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주의에 비판적인 작품들이 꽤 있습니다. 일단 미국에서 인종편견으로 고통받는 중국인 남자가 주인공인 [짓밟힌 꽃]이 있잖아요. 그리고 오늘 이야기할 [라모나]도 미국에서 백인들이 얼마나 원주민들을 부당하게 대했는지 보여주겠다고 선언하며 시작하는 영화입니다.

라모나는 당연히 주인공 이름입니다. 명망 높은 스페인계 귀족 출신인 숙녀입니다. 하지만 라모나는 그만 알레산드로라는 미국 원주민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말아요. 자신에게도 원주민 피가 섞여 있다는 걸 알게 된 라모나는 알레산드로와 달아나 결혼합니다. 하지만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는 병으로 죽고, 알레산드로도 자신의 땅을 빼앗으려는 백인들과 싸우다 죽어요.

헬렌 헌트 잭슨이라는 작가의 1884년작 소설을 각색한 영화입니다. 이후에도 영화로 네 차례 더 각색되었다고 해요. 당시엔 대단한 베스트셀러였고 그리피스도 배우 시절에 알레산드로를 무대에서 연기한 적 있었대요. 영화를 보고 소설의 줄거리를 체크해봤는데, 고결한 의도로 만들었지만 그렇게까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영화 각색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끊긴 것도 그 뒤로 이야기의 매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요.

[라모나]는 소설 각색물로 한계가 있는 작품입니다. 일단 한 릴짜리 단편영화라 장편소설의 내용을 제대로 담기 어렵죠.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그보다는 움직이는 삽화가 있는 요약본에 가깝다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그리피스의 이후 영화들만큼 배우들의 매력이 잘 보이지 않아요. 일단 메리 픽포드는 미스 캐스팅입니다. 위의 사진을 보세요. 얼굴을 구분하실 수 있겠어요? 게다가 이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는 무성영화 연기라기보다는 과장된 무대연기에 가깝습니다. 어쩔 수 없잖아요. 이 영화엔 클로즈업이 없었으니. '영화배우'로서 메리 픽포드의 진가를 느끼려면 픽포드와 그리피스 모두 조금 더 영화라는 매체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죠. (18/03/31)

★★☆

기타등등
미국 원주민의 인권을 위한 헬렌 헌트 잭슨의 노력은 1887년에 나온 도스일반할당법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이게 의도처럼 원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결과는 정반대였죠.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69556&cid=40942&categoryId=31720


감독: D.W. Griffith, 배우: Mary Pickford, Henry B. Walthall, Francis J. Grandon, Kate Bruce, W. Chrystie Miller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01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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