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고 (2019)

2019.10.17 20:18

DJUNA 조회 수:2789


올해 천우희의 출연작이 6편이나 되는 걸 아시나요? [우상], [메기], [멜로가 체질], [마왕의 딸 이리샤], [버티고] 그리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감쪽같은 그녀]. [메기]와 [마왕의 딸 아리샤]는 목소리만 출연한 것이긴 하지만요.

오늘 다섯 번째 작품인 전계수의 [버티고]를 보고 왔습니다. 전 이 제목이 아주 마음에 안 들어요. 일단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의 카피 제목이지 않습니까. 영화는 영어의 'Vertigo'와 한국어의 '버티고'를 갖고 말장난을 하고 있는데, 이게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안 듭니다. 게다가 검색 편의성도 나빠요.

천우희가 연기하는 서영은 고층빌딩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 30대 직장여성입니다. 멀끔한 외양과는 달리 서영의 삶은 위태롭기 짝이 없습니다. 계약직이라 언제라도 회사에서 잘릴 수 있고, 몰래 사내연애를 하고 있는 직장 상사 진수와의 관계도 안정적인 무언가와 거리가 멉니다. 부산에 사는 엄마와의 관계도 엉망이고 오래 전에 연락이 끊긴 아빠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게다가 건강문제가 있습니다.

도시에 사는 30대 직장여성이 겪을 수 있는 불안과 고통을 압축시킨 인물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성차별적이기 짝이 없는 한국 기업 문화에 대한 묘사는 거의 고발 다큐 수준이죠. 성희롱과 같은 물리적인 폭력은 그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 뒤에 깔린 은은한 불평등이 더 무시무시한 것일 수도.

영화 전체가 서영을 연기하는 배우의 어깨에 걸쳐 있을 수밖에 없고, 천우희는 이 고통스러운 초상을 거의 수난곡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처절하게, 종종 거의 장엄하게 그려냅니다. 그리고 영화 내내 무척 아름다워요. 누군가는 2시간짜리 천우희 화보 영상이라고 말했지만, 화보 영상이 이렇게 고통스러우면 좀 곤란하겠지요.

문제가 있다면 영화가 서영을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종종 영화는 이 사람의 고통과 불안을 심미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는 거 같아요. 서영은 19세기 오페라 주인공처럼 고통받기 때문에 아름다운 존재인 것입니다. 주인공의 고통보다 그 고통이 불러일으키는 연민을 더 중요시하는 거 같고.

그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물이 이 영화의 '남자주인공'인 관우입니다. 관우는 서영이 일하는 빌딩의 창문을 닦는 로프공이에요. 관우는 창문 너머로 서영을 관찰하고 서영 역시 관우의 시선을 눈치챕니다. 이게 로맨스의 시작이라면 큰 문제가 아니겠지요. 하지만 영화의 관우 파트는 후반에 이를 때까지 집요하게 서영을 훔쳐보고 스토킹하는 행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겐 관우의 이런 행위가 영화의 시선과 자꾸 겹쳐 보인단 말입니다. 한마디로 '고통받는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 연민하는 남자'의 비중이 지나치게 커요.

이러니 두 사람이 만나 소통하는 결말에선 움찔하게 됩니다. 이 결말 부분을 만들기 위해 스토리가 쓰여졌을 테고, 분명 극적이고 아름답다고 할 수 있기도 한데, 이게 서영의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방법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 것이죠. 연민에 지나치게 빠지다보니 주인공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는 기회를 날린 것입니다. 보면서 역시 벼랑 끝에 몰린 30대 여성을 다룬 [아워 바디]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아워 바디]의 자영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욕망 때문에 답 없는 사고를 치는 여자지만 적어도 그 모든 행동은 자영 스스로의 의지로 결정한 것이잖아요. 서영에겐 제대로 된 의지를 행사할 기회가 없습니다. (19/10/17)

★★★

기타등등
영화가 끝나고 서영이 제대로 된 법적 해결책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증인도 있잖아요.


감독: 전계수, 배우: 천우희, 유태오, 정재광, 홍지석, 박예영, 나미희, 전국향, 윤상화, 다른 제목: Vertigo

IMDb https://www.imdb.com/title/tt10925770/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8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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