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리 (2019)

2020.05.13 01:28

DJUNA 조회 수:1051


보리는 강릉에 사는 초등학생 여자아이입니다. 가족은 엄마, 아빠, 남동생. 부러울 정도로 화목한 가정인데, 한 가지 점에서 다른 '정상가족'과 다릅니다. 보리를 제외한 세 사람은 모두 농인이에요. 중국집에 전화를 거는 것도, 자잘한 통역에 불려가는 것도 모두 보리의 몫입니다. 이게 불만일까요? 아뇨. 그렇지는 않아요. 하지만 보리에겐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소리를 잃어서 엄마, 아빠, 동생처럼 농인이 되는 것이죠.

우리 같은 청인 관객은 이 소원을 쉽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이 아이는 스스로 장애인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의 감독 김진유는 보리처럼 코다(CODA, Child of deaf adult)였다고 합니다. 이 영화에 나온 이야기 상당수가 농인 부모를 둔 아이였던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해요. 소리를 잃고 싶어했던 것도 그 중 하나였고요. 기자 인터뷰에서 들었는데, 부모처럼 농인이 되고 싶다고 빌다가 실제로 농인이 되었고 그 때문에 행복해하는 사람도 만난 적 있다고 하더군요. 농인 사회의 정체성은 청인들이 생각하는 장애/비장애의 이분법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나는 보리]는 그 중 일부를 보여주는 영화인 것이고요.

영화의 절반은 CODA로서 보리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중반에서 보리는 소리를 잃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어요. 깨어난 보리는 여전히 귀가 들리지만 들리지 않은 척 하지요. 여기서 보리는 지금까지 간 적이 없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갑니다. 완전히 농인의 세계도 아니고 CODA의 세계도 아닌 애매한 중간지대예요. 사람들은 이제 보리를 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 취급을 하고 아이는 그 전에는 몰랐던 또다른 사각의 차별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 정도면 어두운 이야기여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는 많습니다. 영화는 화사하고 귀엽고 밝아요. 보리 또래 아이라면 슬슬 삶이 거칠고 힘들어질 법도 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대체로 선량하고 보리도 어두운 구석이 없는 아이입니다. 그런 면에서 비슷한 소재를 다룬 [비욘드 사일런스]와 비교가 되는데, 그렇다고 일대일로 비교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CODA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라고 [나는 보리]가 [비욘드 사일런스]와 같은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는 것이죠. 밝고 화사한 그림 안에서 명쾌한 주제가 담긴 이야기를 하는 건 감독의 당연한 선택이고, 그 선택 안에서 이 영화는 매력적입니다. (20/05/12)

★★★

기타등등
보리의 동생은 축구 선수이고, 클라이맥스는 유소년 풋살 대회가 장식합니다. 텔레비전에서 정말로 유소년 풋살 대회를 생중계 해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안 해준다고 해도 요새는 유튜브 중계 같은 게 가능하겠죠?


감독: 김진유, 배우: 김아송, 이란하, 곽진석, 허진아, 황유림, 다른 제목: Bori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79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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