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천천히 안녕]은 [행복 목욕탕]의 감독 나카노 료타의 신작입니다. 원작은 [작은 집]의 저자 나카지마 교코가 2015년에 발표한 동명소설이고 이 책은 영화 개봉과 함께 얼마 전에 번역본이 나왔어요. 책은 아직 안 읽어 보았는데, 원작과 다른 부분이 꽤 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원작에서는 자매가 세 명이지만 영화에서는 둘째가 사라져서 두 명이에요. 손자도 두 명에서 한 명으로 줄었고요. 막내의 직업은 요리사가 아니라 푸드 스타일리스트이고, 원작에서는 10년이었던 시간이 7년으로 줄었고요.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소설의 기반이 되는 아버지의 치매라는 소재는 작가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영화는 은퇴한 교사인 아버지 쇼헤이가 치매를 앓기 시작하며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병은 이후 7년 동안, 남편과 같이 살며 뒷바라지를 하는 어머니 요코, 가족과 함께 캘리포니아 어딘가에 살고 있는 언니 마리, 일이 그렇게 잘 풀린다고 할 수 없는 요리사인 막내 후미의 삶을 지배합니다. 영화는 각각 2년의 터울이 있는 네 개의 챕터를 통해 이들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고 변화하는지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는 동안 일본엔 대지진과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고 2020년 도쿄 올림픽 개최가 확정되지요.

나쁜 게 거의 없는 영화입니다. 좋은 배우들이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의미있는 가족 이야기예요. 캐릭터도 다들 공감할만하고 와닿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지나치게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치매는 결코 평화로운 병이 아니고 당사자와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스러운 경험일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이 영화는 요새 일본 영화를 특징짓는 그 안전한 예쁨 속에서 그 거친 경험을 계속 미화하고 희석합니다.

선택된 이야기의 우선순위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치매 이야기만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자매의 이야기 상당부분은 아버지의 치매 없이도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니, 꼭 필요한가라는 생각이 들게 되지요. 치매와 간병이라는 보다 중요한 주제에서 자꾸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겁니다. 이 영화의 남편과 같이 사는 유코는 분명 할 말이 많을 텐데, 우린 딸들의 시선에 갇힌 어머니의 밝고 씩씩한 면밖에 못 보고요. 원작에서는 이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모르겠지만요. (20/05/20)

★★☆

기타등등
1. 언니 마리가 영화 초반에 영어를 못하는 건 이해가 간단 말이에요. 하지만 아들이 커서 대학 진학 준비를 할 때까지 7년이나 미국에서 살았는데 아직까지 영어가 제자리면 좀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정도면 어렸을 때 미국에 간 아이가 거의 미국이 될 수밖에 없는 기간인데, 나이 든 아들 역을 맡은 배우는 왜 그렇게 영어가 서툴고 왜 그렇게 대놓고 일본인일까요. 왜 그 가족 주변에는 일본 문화 애호가만 있는 걸까요?

2. 영어 제목은 [A Long Goodbye]. 영화의 원제는 레이몬드 챈들러 소설의 일본어 역제와 같습니다. [조금씩, 천천히 안녕]도 사실은 원제를 조금 융통성 있게 번역한 제목이지요. 단지 전 이 제목을 정말 기억 못하겠습니다. 요새 나오는 대부분 일본 영화 번역제들이 그렇듯.


감독: Ryôta Nakano, 배우: Yû Aoi, Yuito Kamata, Chieko Matsubara, Yûko Takeuchi, Tsutomu Yamazaki 다른 제목: A Long Goodbye

IMDb https://www.imdb.com/title/tt9657904/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8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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