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착륙 The High and the Mighty (1954)

2020.08.18 14:49

DJUNA 조회 수:876


전에 [에어포트]를 다시 보고 그와 관련된 자료들을 찾다가 윌리엄 A. 웰먼이 [에어포트] 시리즈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는 [The High and the Mighty]라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궁금했는데, 그게 왓챠에 [비상착륙]이라는 제목으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국내에서는 [진홍의 날개]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더군요.

영화의 배경은 호놀룰루를 출발해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여객기입니다. 존 웨인이 연기하는 부기장 댄 로먼은 사고로 가족을 잃고 악몽에 시달리고 있어요. 이륙한 뒤 비행기는 계속 이상현상을 보이는데, 결국 중간에 엔진 고장이 납니다. 엔진 고장과 함께 연료도 날아갔고 이대로 가다간 바다에 추락할 판입니다.

우리가 이런 종류의 영화들에 기대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있습니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조종사 주인공, 다양한 승객들, 대재난, 위기일발 착륙 같은 것들요. 어떻게 보면 원조 [에어포트]보다 더 [에어포트]스럽습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더 [에어플레인!]스럽다고 해야 할까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기장과 같은 클리셰는 [에어포트] 시리즈가 아니라 [제로 아워!]에서 가져온 것이고 [에어포트]에서는 재난의 비중이 그렇게 크지 않으니까요. 참, 이 영화에서 기장으로 나오는 로버트 스택은 [에어플레인!]에도 나옵니다.

단지 [에어포트]가 훨씬 잘 만든 영화입니다. [에어포트]도 완벽한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영화를 구성하는 재료들이 모두 착착 맞아떨어지면서 이야기 전체를 구성하는 과정의 쾌락이 있습니다. 하지만 [비상착륙]엔 그게 없어요.

가장 큰 문제점은 실패한 [그랜드 호텔] 영화라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건 승객들의 사연인데, 이들은 모두 굉장히 재미없고 얄팍한 스테레오타이프예요. 캐스팅이 화려하다면 배우들이 그 빈 자리를 채워줄텐데, 이 영화에는 존 웨인을 제외하면 비중있는 스타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존 웨인의 캐릭터가 이들을 모두 커버할 정도로 비중이 크냐? 아니에요. 주인공이긴 하지만.

비행기와 관련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낫습니다. [에어포트]보다 오히려 더 상세하게 다루어지고 있고요. 그리고 여기서 영화는 존 웨인을 잘 쓰고 있어요.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주인공이기도 한데, 좋은 프로페셔널이기도 합니다. 자기 일을 잘 하는 전문가를 볼 때 느낄 수 있는 쾌감이 있어요. 마지막에 올바른 판단을 내릴 때도 그렇지만 승객들을 대하는 태도도 좋았어요. 단지 영화에 나오는 위기상황이 제대로 시각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아쉽습니다. 관객들은 캐릭터들의 대화를 통해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거든요. 웰먼의 비행기 영화로서는 얼마 전에 다룬 [선더 버즈]가 더 좋았어요. (20/08/18)

★★☆

기타등등
1. 한국인 캐릭터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름이 도로시 첸이에요. 당사자는 만주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인이라고 설명합니다. 여전히 굉장히 어색하긴 하지만 1950년대 초반이라는 시대배경에 맞추어 이 캐릭터의 설정을 설명할 수 있는 길이 없는 건 아닙니다. 배우는 조이 킴이라는 사람인데, IMDb에 영화 두 편이 올라와 있습니다. 제 생각엔 한국인 배우가 캐스팅되어서 원작소설엔 중국인이었던 캐릭터의 국적이 바뀐 거 같아요. 살짝 어눌하게 들리지만 가짜가 아닌 한국어 대사도 하나 있습니다. 절대로 한국 것일 리가 없는 나쁜 번역체의 속담이 나오죠.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호감이 가는 캐릭터이고 주변 사람들도 잘 대우를 해주어 안심이 되었습니다.

2. 50년대 비행기라 객석과 조종석에 있는 사람들 모두 담배를 뻑뻑 피워댑니다. 그리고 요즘과 같은 시대라면 승무원의 직업 환경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받았겠지요.

3. 당연한 일이지만 회사에서는 더 좋은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싶어했습니다. 바바라 스탠윅, 스펜서 트레이시, 진저 로저스, 조운 크로포드, 아이다 루피노, 도로시 맥과이어에게 제안을 했는데, 다들 역할이 작다고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겠지요. 솔직히 캐릭터가 좋고 이야기가 좋았다면 작은 역이라도 맡지 않았겠어요? 웰먼과 보통 사이가 아닌 스탠윅도 거절했다면 문제는 각본이죠.

4. 이 영화에서 가장 좋은 건 디미트리 티옴킨의 음악입니다. 영화 내에선 존 웨인이 부는 휘파람으로 나와요. 이게 주인공의 버릇이라고 설정되어 있는데, 이게 진짜 버릇이었다면 동료들이 좀 미쳤을 거 같습니다.


감독: William A. Wellman 배우: John Wayne, Claire Trevor, Laraine Day, Robert Stack, Jan Sterling, Phil Harris, Ann Doran, Robert Newton, David Brian, Paul Kelly, Sidney Blackmer, Julie Bishop, Pedro Gonzalez Gonzalez, John Howard, Wally Brown, William Campbell, John Qualen, Paul Fix, George Chandler, Joy Kim, Michael Wellman, Douglas Fowley, Regis Toomey, Carl "Alfalfa" Switzer, Robert Keys, William Hopper, William Schallert, Julie Mitchum, Walter Reed, Doe Avedon, Karen Sharpe, John Smith, 다른 제목: 진홍의 날개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47086/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29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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