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꼴리아 (2021) [TV]

2021.12.31 01:11

DJUNA 조회 수:1527


[멜랑꼴리아]는 수학을 다룬 드라마라고 홍보되어 제 관심을 끈 작품입니다. 이게 가능할지 궁금했는데, 솔직히 그리 잘 풀린 것 같지 않습니다. 수학을 다룬 재미있는 드라마는 여전히 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이 작품을 만든 사람들은 그런 걸 만들 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사제간의 로맨스 이야기입니다. 선생은 막 명문고에 부임한 수학선생 지윤수입니다. 학생은 그 학교의 수학영재인 백승유입니다. 스캔들이 터지고 그들은 헤어집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비리를 은폐하려는 학교의 음모가 있죠. 몇 년 뒤 성공한 수학자가 되어 돌아온 승유는 학원교사가 된 윤수와 함께 지금은 영제학교가 된 모교의 음모를 밝혀내려 합니다.

줄거리 요약만 봐도 첫 번째 문제가 보입니다. 드라마는 수학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수학만으로는 이야기를 끌어갈 수 없었어요. 이들 중 한 명이 소위 허구의 '천재 수학자'인 경우라면 이는 더 어려워집니다. 캐릭터를 정의하는 업적을 만들어내고 드라마에 녹여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걸 시도한다고 해도 이번엔 시청자들이 알아먹지 못합니다.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SF인데, [멜랑꼴리아]가 그 장르에 속하지 않은 건 척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작가와 연출진이 수학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티가 팍팍납니다. 하디와 라마누잔에 대한 책이나 영화를 보고 감동먹은 작가가 '사제 설정으로 수학 로맨스 드라마를 쓰자!'라고 결심하고 여기저기에서 잡다한 지식들을 주워와 허겁지겁 만든 티가 난달까요. 분명 쓰면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겠지만, 이 드라마에서 수학은 충분히 드라마에 반영되지 못합니다. 그냥 흔한 천재 이야기의 장식물일 뿐이고 뒤로 갈수록 더해지지요.

결국 드라마는 [스카이 캐슬] 이후 지나치게 많아진 대한민국 엘리트 학교 비판물이 됩니다.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과연 이런 이야기가 이렇게 많을 필요가 있을까요. 이러면 오히려 비판대상의 목소리만 더 크게 만들어주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세계 바깥에 있는 아이들에게 눈을 돌리는 게 더 유익하죠. 그리고 과연 천재를 통해서만 수학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보통 사람들에겐 수학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들에게 수학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파보았다면 훨씬 설득력있는 수학 이야기가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이 학교 비리 이야기는 수학 이야기와 로맨스 이야기 모두를 조금씩 망쳐놓습니다. 학교의 비리가 발각되고 메인 악당인 노정아가 몰락하는 과정은 거의 자동비행하는 수준입니다. 백승유와 지윤수는 이 목적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이들이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이들의 로맨스는 그냥 도구화될 뿐이고요. 이들은 심지어 대단한 위기에 빠지지도 않습니다. 예를 들어 백승유는 이미 세계적인 업적을 쌓은 수학자인데, 학교가 이 사람에게 무슨 해를 끼칠 수 있겠어요? 아니, 애당초부터 그 경력으로 고등학교 교사를 시작한 것부터가 이상하죠.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에너지와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 건 악당인 노정아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악당으로 디자인된 사람이기 때문에 주인공의 깊이는 가지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은 굉장히 위험해요. 얄팍한 악당에게 드라마가 끌려가는 거요. 오히려 그 사이의 사람들, 그러니까 어른들의 음모에 말려든 성예린이나 김지나와 같은 학생들이 입체적인 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주는데, 이 드라마를 만든 사람들은 '수학영재'라는 특권 계급에 속하지 않은 이 아이들에게 별 관심이 없습니다.

임수정의 신작인데, 유감스럽게도 이 배우의 가능성이 잘 살아난 작품은 아닙니다. 이 정도면 다들 눈치채야 하는데, 이 배우가 나온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이성애 로맨스가 성공적으로 그려진 적은 없습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데이트 폭력과 가스라이팅으로 도배된 재난물이었지요. [WWW]의 배타미처럼 재미있는 캐릭터가 만들어진 경우에도 남자와 엮이면 이상하게 위축되어 버렸어요. 한참 나이가 많은 스승으로 나오는 이 드라마에서도 지윤수는 계속 수동적인 '청순가련'으로 빠집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수도 있지만 계속 이럴 수는 없잖아요. 언젠가 극복해야 할 문제입니다. (21/12/31)

기타등등
구멍투성이 설정. 예를 들어 성예린은 처음부터 그렇게 백승유와 치열하게 경쟁할 이유가 없습니다. 수학자가 될 것도 아니고 분명 그보다 더 잘하는 영역이 있을 텐데요. 어차피 부모들도 자신의 계급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게 목표일텐데 왜 딸에게 그 고생을 시키는 걸까요.


연출: 김상협, 박미연, 각본: 김지운 배우: 임수정, 이도현, 진경, 오광록, 우다비. 장현성, 변정수, 신수연, 다른 제목: Melancholia

IMDb https://www.imdb.com/title/tt15146242/
Hancinema https://www.hancinema.net/korean_drama_Melancholia.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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