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웨일 The Whale (2022)

2023.03.06 22:42

DJUNA 조회 수:3962


사전정보 없이 [더 웨일]을 보았습니다. 대런 애러노프스키의 신작이라는 것, 브렌든 프레이저가 나온다는 것만 알았죠. 첫 장면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10년 전에 주인공이 게이 포르노를 보면서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영화로 브랜든 프레이저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를 거라고 누가 말했다면 전 믿었을까요.

척 봐도 연극 각색물처럼 보이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거의 모든 액션이 주인공 찰리의 집 안에서 일어나요. 그리고 스토리의 국면 전환 대부분이 등장인물의 등장과 퇴장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사무엘 D. 헌터라는 작가의 희곡이 원작이에요. 10여년 전에 애러노프스키가 이 연극을 보고 각색을 결심했다던데, 캐스팅 때문에 애를 먹다가 프레이저가 들어오면서 결국 영화로 만들어진 모양입니다.

제목의 '고래'는 주인공 찰리를 가리킵니다. 체중이 600파운드, 그러니까 270킬로그램이 넘는 남자로, 혼자 일어날 수도 없는 사람이에요. 화장실에 가고 침대에 눕는 데에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고요. 그러면서 또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고칼로리 음식을 입에 쑤셔 넣는데, 보고 있으면 공포스럽습니다. 정말 식욕이 떨어지는 영화예요.

찰리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체중도 체중이지만 울혈성 심부전을 앓고 있고 무엇보다 당사자에게 삶의 의욕이 없어요. 찰리의 몸 자체가 포기의 결과입니다. 남자친구가 죽은 뒤로 그 꼴이 됐죠. 남자친구와 살기 위해 아내와 딸을 버렸으니 가족과의 관계도 끔찍하고요. 그나마 찰리를 챙겨주는 사람은 간호사 리즈뿐입니다. 그런데도 용하게 사회인으로서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는 해요. 온라인으로 학생들에게 작문을 가르치거든요. 컴퓨터의 카메라는 꺼놓고요.

그래도 영화는 의외로 긍정적입니다. 여러 사람들, 그러니까 기독교 소수 종파(원작에서는 모르몬교라고 합니다)의 선교사 토머스, 반항적인 딸 엘리 같은 캐릭터들이 찰리의 집에 드나들면서 계속 그르렁거림과 긴장감이 발생하긴 하는데, 정작 이 영화에는 아주 악의가 넘치거나 하는 사람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한계 안에 갇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최선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중심에는 가족의 회복이라는 친숙한 주제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가 진부해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죠. 하지만 자기가 버린 딸과 관계를 회복하려고 애를 쓰는 아버지를 굳이 냉소적으로 볼 필요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특히 죽어가는 사람이라면요. 퀴어 캐릭터라고 해서 이 주제에서 자유로울 이유도 없겠지요. 영화는 종교를 다루는 방식에서 꽤 재미있는데, 종교의 역할에 대해서는 냉정하지만, 그렇다고 토머스 캐릭터를 조롱하거나 내치지도 않고 이해하려 최선을 다하는 편입니다.

오히려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작품이 동성애와 몸을 다룰 때입니다. 원작자 헌터 자신이 동성애자이니, 반동성애적인 작품은 당연히 아니지요. 하지만 사랑도 잃고 몸도 망가지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찰리의 모습엔 80년대 에이즈 시절에 나왔던 퀴어 소재 작품들의 그 친숙한 예스러움이 느껴집니다. 비만을 다루는 방식은 조금 더 위험해요. 물론 찰리의 몸은 충분히 드라마 안에서 설명이 됩니다. 하지만 비만 자체가 천형처럼 그려지고 이와 관련된 주인공의 행동이 스테레오타이프처럼 보이기 시작한다면 걱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헌터 역시 어렸을 때 이 영화에서 그려진 것과 비슷한 십습관 장애로 애를 먹었던 모양인데, 그래도 찰리 정도는 아니었겠죠.

브렌든 프레이저의 영화입니다. 전 이 영화의 캐스팅 논리가 조금 신경 쓰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프레이저가 체중도 늘고 머리숱도 많이 벗겨진 건 맞는데, 그게 "그러니까 넌 뚱뚱한 역을 맡아라"로 이어진 건 좀 당황스럽죠. 프레이저가 찰리만큼 살이 찐 건 당연히 아니니, 이 사람이 찰리 역할을 하려면 여전히 뚱뚱한 몸 분장을 해야 하는데 말이죠. 하지만 정말 체중이 270킬로그램인 배우를 찾는 건 쉬운 일일 리가 없고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연기니까요. 프레이저가 최근 겪은 일들이 연기에 반영되었는지는 몰라도 절절함이 넘칩니다. 그리고 애러노프스키가 주변에 배치한 배우들, 그러니까 홍차우, 세이디 싱크, 타이 심킨스와의 호흡도 좋죠. 특히 홍차우는 프레이저와 함께 이 영화의 감정적인 중심점 중 하나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23/03/06)

★★★

기타등등
딸 엘리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배우는 세이디 싱크의 동생 제이시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만다 모튼을 참 오래간만에 보내요.


감독: Darren Aronofsky, 배우: Brendan Fraser, Sadie Sink, Hong Chau, Ty Simpkins, Samantha Morton

IMDb https://www.imdb.com/title/tt13833688/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220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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