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의 원작은 찰리 맥커시의 그림책이에요. 맥커시는 영국의 일러스트레이터인데, 인스타그램에 어린 남자아이와 동물들이 나오는 그림들을 그려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들이 기대이상으로 인기를 끌었고 그 캐릭터들이 나오는 그림책으로 이어졌어요.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30분 좀 넘는 길이의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애플TV플러스에서 [찰리 맥커시 이야기]라는 다큐멘터리와 함께 보실 수 있어요.

영화의 이야기는 길을 잃은 어린 남자아이가 두더지를 만나면서 시작해요. 그리고 두더지를 사냥하려던 여우가 덪에 걸리자 그 여우를 구해주고 나중에 말도 한 마리 만납니다. 그리고 아이는 동물들과 함께 집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영화의 각본은 특별한 이야기가 없는 원작에 드라마를 만들어주려는 시도의 결과입니다. 원작에도 흐릿한 이야기는 있어요. 순서대로 동물들을 만나고 폭풍우도 겪고. 하지만 중요한 건 아이와 동물 친구들과의 대화이고 기승전결의 이야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죠. 하지만 영화로 만들려면 보다 강한 드라마가 필요하고, 각본은 집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재료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전체적으로 영화가 조금 오싹해졌습니다. 매커시의 그림책은 따뜻하고 온화해요. 하지만 영화에선 '과연 이 남자아이가 살아있기는 한가, 여기가 실제 세계이기는 한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마침내 아이가 목적지에 도착하는 후반에는 유달리 그렇고요. 그리고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지는 겨울 풍광이 그림책보다 훨씬 춥게 느껴지지요. 아이가 물에 빠졌을 때는 정말 저체온증이 걱정될 정도입니다.

원작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수많은 경구들은 솔직히 영화로 넘어가면서 매력을 잃습니다. 정확히 같은 내용의 텍스트를 쟁쟁한 배우들이 읽어주는데, 이게 스토리 안에 들어가니까 조금 공허해지는 것 같단 말이죠. 이 문장들은 한 페이지 안에서 그림과 함께 있을 때 가장 좋아요.

애니메이션의 완성도는 훌륭합니다. '어떻게 이런 그림을 영화화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원작의 그림이 정교하게 살아나는데, 정말 놀랍다고 할 수밖에요. 그것도 역병 때문에 여러 나라 사람들이 다들 떨어져서 작업을 했다는데. (23/03/09)

★★★

기타등등
이런 영화를 보면 '왜 여기 나오는 동물들은 다 수컷인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감독: Peter Baynton Charlie Mackesy, 배우: Jude Coward Nicoll Gabriel Byrne Idris Elba Tom Hollander

IMDb https://www.imdb.com/title/tt22667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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