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러 갑니다 (2009)

2011.01.13 13:59

DJUNA 조회 수:13062


박수영/박재영 형제의 단편 [핵분열 가족]과 [가족 같은 개, 개 같은 가족]을 본 관객들이라면, 박수영의 [죽이러 갑니다]의 도입부만 봐도 불길한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박수영이 가족이라는 재료를 영화에 풀어놓고 얌전하게 그들을 지켜만 볼 리는 없지 않습니까.


예상대로입니다. 부부, 아들, 딸, 외삼촌으로 구성된 이 가족은 가족 소유의 외딴 별장에 들어가자마자 호러영화에서나 겪을 법한 악몽과 마주칩니다. 아빠의 직장에서 해고당한 노동자 한 명이 작정하고 복수에 나선 것이죠. 그는 '회사에서 잘렸다'는 표현에서 '잘렸다'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실행합니다. [쏘우]나 그 영향을 받은 고문 포르노의 상황을 상상하시면 되겠습니다. 다양한 도구들이 등장하고 사람들의 사지가 잘려나갑니다. 


이 폭력 장면들은 거의 완벽하게 토착화되어 있습니다. 이경영이 연기하는 노동자는 별장 주변을 전형적인 한국 파업 시위 현장처럼 꾸며놓고 구호를 외치며 무기를 휘두릅니다. 그러는 동안 배경음악으로는 정말로 야비하게 편곡된 [아침이슬]이 흐릅니다. 전 배를 잡고 웃었지만 모두가 좋아할 농담 같지는 않습니다. 설명만 들어도 그렇게 섬세하거나 예의바른 유머는 아니지 않습니까.


노동자의 복수로 일관하며 고문극으로 끝낼 수 있었던 이야기지만, 박수영은 이야기를 조금 더 넓게 펼쳐놓습니다. 백숙배달부가 등장하는 중반부터 영화는 복수극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가죠. 하지만 이건 주인공 가족에게 결코 희소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저질스럽고 유치하고 이기적인 속내가 완전히 폭로되기 때문에, 전반부에 그럭저럭 유지될 수 있었던 감정이입이 송두리째 날아가버리거든요. 


짧은 영화입니다. 엔드 크레딧까지 포함해서 간신히 80분을 채우죠. 그 이상 끌었다면 피곤했을 것 같습니다. 농담의 질, 폭력의 가학성, 캐릭터들의 깊이가 딱 이 정도의 길이만을 허용하고 있어요. 다행히도 영화는 멈추어야 할 바로 그 순간에 멈추었고, 불필요한 사족으로 관객들을 인질로 잡지 않습니다. (11/01/13) 


★★★


기타등등

시사회 때 김꽃비가 안 보이더군요. 들어 보니 요새 프랑스에 있다고...


감독: 박수영, 출연: 이경영, 김병춘, 김진수, 김꽃비, 이현정, 강인형, 박영서, 다른 제목: Be My Guest


IMDb http://www.imdb.com/title/tt151963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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