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파 리는 거의 마사 스튜어트의 환생처럼 보이는 완벽한 가정주부입니다. 애들도 잘 키웠고, 남편 내조도 잘하고, 가사 일도 완벽하게 처리하고, 요리도 잘하고...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조금은 미스터리처럼 보이는 사람이죠. 도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니까요.


물론 레베카 밀러의 [피파 리의 특별한 로맨스]는 이 완벽한 외양에 균열이 가고 깨지는 과정에 대한 영화입니다. 피파 리가 한참 연상인 남편과 함께 은퇴한 노인네들이 모여사는 마을로 이사가면서 그 과정은 시작되지요. 기껏해야 50대 초반인 피파에게 이건 위태롭기 짝이 없는 전환입니다. 이후 영화에서는 두 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관객들은 피파 리의 나레이션을 따라 그녀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되고, 피파 리는 그 마을에서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묻혀 있던 자신의 욕망을 발굴해냅니다. 


이 과정은 모두 호사스러운 캐스팅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위노나 라이더, 줄리안 무어, 키아누 리브스, 마리아 벨로, 모니카 벨루치와 같은 배우들이 불꽃놀이처럼 여기저기서 반짝거리다가 사라지지요. 모니카 벨루치 같은 경우엔 과연 이 배우를 이런 식으로 소비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물론 주연배우인 로빈 라이트와 앨런 아킨, 블레이크 라이블리의 안정된 연기도 잊어서는 안 되고요. 


단지, 캐스팅의 호사스러움을 걷어내면 무엇을 챙겨야하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피파 리에겐 분명 우리에게 해줄만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약에 절은 불량소녀에서 완벽한 가정주부로 변신하는 과정은 특별하죠. 현실 세계의 피파 리가 겪는 전환 과정 역시 할 필요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둘은 서로를 전혀 도와주지 않아요. 논리적으로는 연결되어 있어보이는데, 정작 영화에서 보면 스타 캐스팅의 자잘한 단편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들을 묶는 결말도 도식적이라 영화가 끝나면 퇴근시간을 알리는 벨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배우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킥킥거리며 볼 수 있는 가벼운 즐거움이 있죠. 이 둘의 합만 해도 상당히 큽니다. 하지만 [피파 리의 특별한 로맨스]는 지금까지 나온 레베카 밀러의 영화들 중 가장 경박하고 얄팍한 영화입니다. (11/01/23)


★★☆


기타등등

레베카 밀러의 동명 소설이 원작입니다. 하지만 소설을 쓰는 동안에도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했다고 하더군요.


감독: Rebecca Miller, 출연: Robin Wright, Blake Lively, Alan Arkin, Maria Bello, Zoe Kazan, Keanu Reeves, Shirley Knight, Julianne Moore, Monica Bellucci


IMDb http://www.imdb.com/title/tt1134629/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8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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